성폭력 피해를 호소했던 대학생이 숨진 사건에서 경찰의 불송치 결정 이후 유족이 직접 CCTV 영상과 통신기록을 찾아내면서 사건이 다시 검찰의 판단을 받게 됐다. 유족이 분석한 CCTV 영상만 약 1시간 분량, 15만 프레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찰의 초기 증거 확보와 수사 과정이 적절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사건은 경기 안산의 한 주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대학생이 업주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신고 내용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했지만 성폭력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는 경찰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의신청서를 제출했으며 이후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
딸을 잃은 뒤 유족은 사건 당시 상황을 처음부터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CCTV 설치업체를 운영해온 피해자의 어머니는 사건 현장을 촬영한 영상을 직접 확보했다. 약 1시간 분량의 영상을 장면별로 나눠 확인했고 분석한 영상은 약 15만 프레임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히 CCTV만 살펴본 것은 아니었다.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던 통화와 메시지 기록 등을 찾아 사건 발생 전후의 상황을 시간 순서대로 다시 정리했다.
누구에게 언제 전화를 걸었는지,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 등을 CCTV 시간대와 맞춰가며 확인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유족은 이렇게 확보한 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경찰의 첫 수사에서 이 자료들이 어느 정도까지 확보되고 검토됐는지가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특히 성폭력 사건은 사건 직후 피해자와 피신고인의 동선과 연락 내용, CCTV 등 객관적인 자료를 신속하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영상이 삭제되거나 통신자료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남긴 이의신청으로 사건은 검찰에 넘어갔다. 검찰은 사건 기록을 검토한 뒤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고 추가 수사가 진행됐다.
그러나 경찰은 보완수사 이후에도 기존 불송치 판단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경찰의 수사 기록과 유족이 별도로 확보한 자료 등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
유족이 찾아낸 자료가 알려지면서 시민사회에서도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성폭력 관련 단체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사건 초기 수사가 충분했는지 검증해야 한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피해자가 다녔던 대학 구성원들도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사건을 다시 판단해 달라는 요구에 힘을 보탰다.
다만 유족이 확보한 자료가 피신고인의 혐의를 직접 입증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잘못됐는지 역시 검찰의 증거 검토와 추가 수사를 거쳐 판단해야 한다. 현재 단계에서 피신고인의 혐의가 인정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불송치 이후 새로운 증거가 갑자기 등장해서만은 아니다. 수사기관이 먼저 확보하고 분석했어야 했는지를 따져봐야 할 자료를 유족이 직접 찾아 나섰다는 점 때문이다.
약 15만 프레임의 CCTV와 통신기록이 기존 수사에서 어떤 부분을 보완하는지, 경찰은 최초 수사 당시 왜 해당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는지, 검찰의 재검토 과정에서 기존 불송치 판단이 유지될지가 사건의 남은 쟁점이다.
최예원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