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고통을 덜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무통주사' 시술을 받은 20대 산모가 의식불명에 빠진 뒤 끝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마취 과정에서의 과실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해당 병원에 대한 경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유족들은 단순한 의료사고를 넘어 고위험 분만 환경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마취과 전문의 상주 의무화와 수술실 CCTV 설치 등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사건은 지난 6월 대전 동구에 위치한 A산부인과에서 발생했다. 출산을 위해 병원을 찾은 산모 B씨(29)는 진통 완화를 위해 경막외마취, 이른바 무통주사 처치를 받았다. 그러나 시술 약 10분 만에 B씨는 갑작스러운 어지럼증과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고, 의료진은 산모의 활력 징후와 태아 심박동의 이상을 확인하고 긴급 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했다.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으나, 산모 B씨는 심정지 상태에 빠진 뒤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결국 한 달 넘게 연명치료를 받던 B씨는 지난 7월 7일 세상을 떠났다.
유족 측은 병원 측의 명백한 의료과실을 주장하고 있다. 경막외마취는 척수를 둘러싼 경막 바깥 공간에 약물을 주입해야 하지만, 시술 과정에서 주삿바늘이 경막을 뚫고 척수강 안으로 들어가 '척추마취'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척추마취는 경막외마취보다 훨씬 적은 양의 약물을 사용해야 함에도 동일한 용량이 주입되면서 전신마취 효과와 함께 호흡 중추가 마비되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유족의 주장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소견과도 일치한다. 국과수는 부검 결과 "경막외마취용 카테터가 경막 안으로 들어가 척추마취 부작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국과수 부검 결과와 진료기록 등을 토대로 A산부인과 원장 등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마취 과정에서 시술 절차를 제대로 준수했는지, 응급 상황 발생 시 대처는 적절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안전한 출산 환경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B씨의 유족은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제2, 제3의 비극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유족이 요구하는 개선안은 ▲경막외마취 등 고위험 시술 시 마취과 전문의 상주 의무화 ▲시술 전 부작용에 대한 상세한 서면 고지 및 보호자 동의 절차 강화 ▲의료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분만실 및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등이다. 한순간의 실수가 산모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만큼,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법적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취지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의료계의 오랜 관행과 분만 환경 전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