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완화하면서 5대 시중은행의 올해 대출 증가 목표가 약 60% 늘어났다. 그러나 이미 상당수 은행이 기존 한도를 넘어선 데다 추가 여력도 집단대출 등에 집중되면서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받으려는 실수요자의 "대출 오픈런"은 계속되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 목표액은 기존 약 4조3400억원에서 6조9800억원으로 확대된 것으로 전해졌다. 추가로 확보된 한도는 약 2조6400억원이다.
은행별로 보면 지난해 말 대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가 기존 0.6∼0.7% 수준에서 1.0∼1.1%로 높아졌다. 금융당국이 금융권 전체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를 1.5%에서 3.0%로 상향한 데 따른 조치다.
문제는 새 한도를 적용해도 실제 여유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5대 은행의 정책성 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27일 기준 651조6377억원이다. 지난해 말 644조9700억원보다 이미 6조6677억원 증가했다.
새롭게 설정된 연간 증가 목표액이 약 6조9800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 계산으로 남은 차이는 3000억원가량에 불과하다. 집단대출 등 총량 산정에서 제외되는 항목을 감안해야 하지만 일반 가계대출을 대폭 늘릴 정도의 여유가 생긴 것은 아니다.
일부 은행은 이미 한도를 넘어섰다. 금융권에서는 별도 페널티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은행이 기존 연간 증가 목표를 초과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 창구에서 체감하는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반 주택담보대출은 여전히 월별 또는 일별 한도를 관리하고 있어 대출 신청이 몰리면 접수를 조기에 마감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총량 규제를 완화했는데도 일반 주택 매수자에게 대출 문이 활짝 열리지 않는 데에는 추가 대출 여력의 배분 방식이 영향을 미쳤다.
금융당국은 8월 이후 발생하는 집단대출 순증액을 은행별 총량 관리 기준에서 100% 제외하는 방향으로 관리하고 있다. 아파트 이주비와 중도금, 잔금 등 이미 주택 계약을 체결한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이 막히는 상황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신용대출도 지원한다. 8월 이후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순증액의 70%를 총량 산정에서 제외하고, 오는 10월 시행 예정인 청년 특례전세대출 보증을 통한 전세대출 증가분도 일정 비율 제외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금융권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상황은 비슷하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를 1.5%에서 3.0%로 높이면서 확보한 추가 대출 여력은 약 30조원이다. 하지만 집단대출과 청년·중저신용자 등 정책 지원을 제외하면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에 사용할 수 있는 몫은 전체의 20%대에 그칠 것으로 추산된다.
대출 수요 자체는 여전히 주택담보대출에 집중되고 있다.
5대 은행의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778조9791억원에서 이달 27일 781조4377억원으로 2조4586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은 617조9411억원에서 620조4172억원으로 2조4761억원 증가했다. 사실상 가계대출 증가분 전체를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한 셈이다.
특히 집단대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5대 은행의 집단대출 잔액은 149조2951억원으로 7월 말보다 1조525억원 증가했다. 월간 기준으로는 2024년 9월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다.
반면 신용대출은 감소했다. 지난 27일 기준 5대 은행 신용대출 잔액은 109조7315억원으로 7월 말보다 218억원 줄었다. 신용대출이 전월보다 감소한 것은 지난 4월 이후 넉 달 만이다.
대출금리 움직임도 엇갈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연속 올렸지만 지난 28일 기준 5대 은행의 혼합형 고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68∼7.15%로 집계됐다. 금리 상단은 한 달 전 7.50%보다 0.35%포인트 내려갔다.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시장금리에 미리 반영된 데다 최근 장기 시장금리가 안정된 영향이다. 반면 단기 금리를 따라 움직이는 신용대출과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은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을 더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총량 규제를 풀었지만 대출시장의 병목은 결국 "누구에게 추가 한도를 배분할 것인가"로 옮겨갔다. 신규 분양과 입주를 위한 집단대출에는 숨통이 트인 반면 기존 아파트를 매수하거나 신용대출이 필요한 실수요자는 여전히 제한된 한도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구조다.
가계부채를 다시 빠르게 늘리지 않으면서도 이미 계약을 맺은 실수요자의 자금줄을 막지 않아야 한다는 두 가지 과제가 동시에 놓여 있다. 60% 늘어난 은행권 대출 목표가 실제 창구에서 일반 실수요자의 대출 기회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이번 총량 규제 완화의 핵심 쟁점이다.
정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