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개봉 전 해외 선판매에서 한국영화 역대 최고액 기록을 새로 썼다. 투자배급사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는 29일 "호프"가 200여 개 국가와 권역에 배급을 확정했고, 해외 선판매만으로 순제작비의 절반가량을 조기 회수했다고 밝혔다. 정확한 계약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영화계에서는 선판매 매출이 20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프"는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내놓는 장편 연출작이다. 비무장지대 인근 마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과 함께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해외 배우들이 출연했다. 국내 장르영화의 문법에 글로벌 배우와 대규모 제작비가 결합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제작 단계부터 해외 시장의 관심을 받아왔다.
이번 성과는 단순한 배급권 판매를 넘어 한국영화 투자 구조에서도 의미가 있다. "호프"는 순제작비가 500억 원대로 알려져 한국영화 역대 최대 규모 제작비 작품으로 꼽힌다. 제작비 부담이 큰 대작의 경우 국내 흥행만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 개봉 전 해외 선판매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먼저 확보했다는 점은 대형 한국영화의 수익 모델이 국내 극장 중심에서 해외 배급과 부가 수익까지 포함하는 방식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선 해외 선판매 기록은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가 세웠다. 이 작품은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을 계기로 205개국 선판매를 달성했고, 해외 판매만으로 순제작비 170억 원을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프"는 판매 국가 수와 별개로 선판매 금액에서 이 기록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호프"의 해외 배급망에는 북미 배급사 네온이 참여했다. 네온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북미에 배급하며 아카데미 캠페인을 이끈 회사로 알려져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네온은 "호프"의 북미 개봉을 맡기로 했고, 이 작품은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일정이 잡혔다.
유럽과 남미, 중동, 아시아 지역 배급도 권역별로 나뉘어 확정됐다. 플러스엠 측은 글로벌 대형 배급사들이 특정 권역을 나눠 맡는 방식으로 한국영화 배급에 참여한 점을 이례적인 사례로 설명했다. 칸국제영화제 필름마켓에서 "호프"가 주요 바이어들의 관심을 받은 점도 선판매 확대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나홍진 감독은 전작마다 장르적 강도를 앞세워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존재감을 남겼다. 데뷔작 "추격자"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500만 관객을 넘겼고, "황해"는 범죄 누아르의 밀도를 보여줬다. "곡성"은 공포와 미스터리, 민속적 정서를 결합해 680만 명 넘는 관객을 모았다. "호프"는 외계 존재와 추격 액션을 전면에 내세운 SF 스릴러라는 점에서 전작들과 다른 규모의 장르 실험이다.
수상 여부와 별개로 칸 경쟁 부문 초청은 해외 판매 과정에서 강한 신호로 작용했다. 대형 상업 장르물이 세계 주요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사례가 많지 않은 만큼, "호프"는 예술영화와 장르 블록버스터의 경계를 동시에 겨냥한 작품으로 소개됐다. 실제 해외 배급사들이 개봉 전 권역별 배급에 나선 것은 나홍진 감독의 이름값, 출연진 구성, 칸 초청 이력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플러스엠은 해외 개봉 성과에 따라 추가 수익 배분이 이뤄지는 형태로 계약이 체결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흥행, 해외 극장 수익, 부가판권 판매가 더해지면 최종 회수 규모는 선판매 금액보다 커질 수 있다. 다만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만큼 흥행 부담도 함께 남아 있다. 한국영화 시장이 침체를 겪는 상황에서 "호프"의 국내 관객 동원력과 해외 실적은 향후 대작 투자 방식의 기준으로 다시 거론될 수 있다.
"호프"는 올여름 국내 개봉을 거친 뒤 9월 북미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서 순차 개봉할 예정이다. 개봉 전 해외 판매 기록은 이미 세워졌지만, 최종 성과는 국내 극장 성적과 해외 관객 반응, 각 권역 배급사의 마케팅 결과에 따라 갈린다. 한국영화 대형 프로젝트가 세계 시장에서 제작비 회수 구조를 얼마나 넓힐 수 있는지가 이번 작품의 남은 쟁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