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25일 ‘정부는 여성건강 위협할 응급피임약 오남용을 방관할 작정인가’라는 내용으로 아래와 같은 입장을 발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2년 식약청 시절 발표 후 의료계와 종교계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던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재검토 중이라 한다. 3년의 유예기간 중 지난해 의약품안전관리원이 실시한 응급피임약에 관한 전문가 설문조사에서도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은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사를 명확히 표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약처는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근거로, 장기간 또는 정기적으로 복용하지 않고, 1회 복용하는 의약품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 것으로 우려된다.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에 대해 산부인과의사들이 반대하는 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응급피임약이 사후 피임약으로 잘못 인식되어 이미 오남용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20대 여성들에게 응급피임약은 이미 응급 시에만 복용하는 약이 아니라 성관계 후 복용하는 사후피임약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소속 전문의들은 ‘20대 여성들의 응급피임약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이미 우려할 만한 수준’이며, 진료 현장에서 응급피임약을 매번 처방 받기 번거롭다며 여러 회분을 한꺼번에 처방해 달라는 환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0년 일반피임약 3만1217건, 응급피임약 3만7537건으로 비슷하던 처방건수가 2014년에는 일반피임약 10만4835건, 응급피임약 16만9777건이 되었다. 일반 피임약 처방이 5년간 3.36배 증가하는 동안, 응급피임약 처방은 같은 기간 4.52배 증가해 증가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응급피임약 처방건수가 이처럼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점은 응급피임약이 반드시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어야 한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편의성과 접근성만 강조해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응급피임약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면, 응급피임약이 계획적인 사전피임 없는 성관계 후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즐겨 사용하는 사후 피임약이 되어 버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일반 피임약의 10배에 달하는 고용량 호르몬제재인 응급피임약에 대해 ‘부정기적으로, 응급 시에만 사용’하지 않고, 장기간 반복적으로 복용함으로써 일어나는 오남용 부작용에 대해 식약처가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해 반문했다. 응급피임약은 지금처럼 의사 처방 하에 복약할 때에만 반복적 복용을 줄이고 개인상담을 통해 개개인에게 맞는 사전 피임계획 수립과 실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응급피임약의 효과에 대한 과신, 제대로 복용해도 100명 중 5~42명 임신.
응급피임약에 대한 접근성을 높임으로써 응급피임약의 피임효과를 높이자는 주장에 대해, 그 주장 자체는 응급피임약의 피임효과가 상당히 낮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응급피임약의 평균 피임률은 85%에 불과해, 매일 먹는 피임약의 92~99%에 비해 충분히 신뢰할 만큼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응급피임약의 평균 피임률 85%는 75%에 해당하는 콘돔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며, 미레나나 루프 등 여성용 피임시스템의 평균 99%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정확한 복약 지도에 따라 응급피임약을 먹더라도 100명 중 15명 꼴로 임신이 된다는 말이며, 다른 계획적인 피임방법 대신 응급피임약을 사후 피임약처럼 반복적으로 이용하게 된다면 오히려 원하지 않는 임신은 급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응급피임약은 일반피임약의 10배에 해당하는 고용량 호르몬 제재인 만큼 충분한 복약지도가 필요하다. 응급피임약 복용 및 피임 상담은 여성의 매우 사적인 문제로서 노출된 공간인 ‘약국’이 아니라 의사와 1대 1 상담이 가능한 ‘병원’이 더 적합하다. 응급피임약 처방 시 성생활 시기, 배란일 여부, 금기증이 있는지, 임신상태는 아닌지 등을 확인한 후 응급피임법 사용이 적합한지, 환자에 대한 선별과 이에 따른 진료가 필요하고, 약의 부작용, 주의사항, 응급시 대처방법 등을 지도해야 하며, 평소 계획을 세워 실천할 수 있는 사전피임 상담 등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응급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으면,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낙태율이 내려갈 것이라는 주장은 논리적인 근거가 부족하며, 여성과 초기 태아에게 심각한 건강상의 위협이 될 수 있다.
◇셋째, 10대 겨냥 응급피임약의 TV광고? 반복적 복용으로 호르몬 내성 커지면 피임실패율 급증
응급피임약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되면, 응급피임약의 TV광고도 가능해진다. 10~20대 초반 젊은 여성들이 이들을 겨냥한 응급피임약 TV광고에 제한 없이 노출됨으로써, 응급피임약을 거부감 없이 자주 복용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응급피임약을 반복적으로 복용하면 호르몬 내성 또한 커져 응급피임약의 피임효과는 더욱 감소하게 된다. 피임실패율이 급증하는 최악의 상태가 올 수 있는 것이다.
성경험 연령은 낮아지고, 결혼 및 임신 연령은 늦어지는 현 추세를 볼 때, 10대나 20대 초반 여성들이 고용량 호르몬 제재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생기는 부작용이 임신이나 출산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체적으로 완전히 성숙되지 않은 10대 청소년의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욱 심각할 것이므로, 10대 청소년의 응급피임약 복용에는 안전장치를 달면 된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청소년 음주나 흡연을 법으로 금지해도 주민등록증 등을 위조하거나 대여해 술과 담배를 구입하는 청소년들이 지금도 많은 것처럼, 응급피임약이 일단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되면 10대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응급피임약 오남용을 막기에는 어떤 안전장치로도 역부족일 것이기 때문이다.
먹는 피임약이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되어 전문의 처방 하에 복용되는 것은 환영할만한 조치이지만, 호르몬 고함량의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 TV광고에 제한이 풀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라고 말했다. 일례로 흡연의 유해성으로부터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자 편의점 광고판에서 담배 광고를 내리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는 정부가 여성 건강에서만큼은 응급피임약의 TV 광고를 개방하는 등 전혀 일관성 없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넷째, 선진국에 비해 1/10도 한참 못 미치는 피임약 복용률, 피임현실 달라도 무조건 따라가나?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 선진국 사례를 볼 때, 부작용 면에서 안전하다는 식약처의 주장은 결코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피임약 복용률로 여성들의 사전피임 실천율을 짐작해 볼 때, 선진국들은 먹는 피임약 복융률이 우리나라보다 6~17배나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진국에서는 응급피임약이 응급 시에만 복용되어 부작용 문제가 크지 않았다면, 2014년기준 먹는 피임약 복용률이 2.8%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는 반대로 부작용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성인 여성에게 국가 재정으로 피임약을 무료 처방하는 등의 획기적 발상이 없는 한, 40%대에 이르는 선진국의 여성 피임률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은 피임약의 복용률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고 피임 및 성에 대한 바른 인식이 정착된 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일반피임약의 10배 용량에 달하는 고용량 호르몬 제재인 응급피임약은 복용 후 메스꺼움이나 구토, 두통, 하복부 통증, 유방 통증, 피로 및 불규칙한 질출혈, 여성호르몬 및 내분비계의 일시적 교란 등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응급피임약 복용 후 평균적으로 31%의 여성들이 호소하는 대량출혈의 경우, 질 출혈을 생리로 오인해 초기 임신상태를 간과할 우려도 있다. 또한, 복용 후 2시간 이내 구토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약이 흡수되지 않으면 응급피임약 복용이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드물게는 응급피임약 복용 후 자궁외임신이 보고되기도 한다. 나팔관 내 수정란 착상 같은 경우는 나팔관 절제 등 생식기의 영구손상을 입을 수 있는 부작용이므로 소수의 부작용이라고 해서 절대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일부 선진국 사례를 들어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피임률이 높은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미국 등에서조차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후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낙태율은 줄어들지 않는 반면, 응급피임약 판매 및 성감염성 질환만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례를 외면해선 안 된다.
◇다섯째, 처방 없는 응급피임약, 계획적인 피임 및 아동 복지 저하, 성병과 불임 증가 등 기타 부작용도 대재앙
응급피임약을 처방전이라는 최소한의 제약조차 없이 자유롭게 복용할 수 있을 때, 콘돔, 사전피임약, 피임 시술 등 현재도 미미한 계획적 피임 실천율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이는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불법낙태가 오히려 늘어남으로써, 선진국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아동복지도 현저히 위협받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최근까지도 근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영아 살해, 영아 유기, 아동 학대 등의 사건에서 보듯이, 자녀를 건강하게 양육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가 되는 것은 장차 우리나라의 주역이 될 아동들의 발달과 복지 및 인권이 훼손될 우려를 줄이기는커녕 더 키우는 것이다.
응급피임약이 무제한적으로 복용될 경우, 성감염성 질병(성병) 전파가 급증할 위험도 선진국 사례에서 보듯이 간과할 수 없다. 피임의 책임이 남성 및 여성 공동, 또는 남성으로부터 여성에게 전가됨으로써, 콘돔 없는 성관계를 통해 성병이 급격히 전파될 가능성이 커진다. 콘돔 없는 성관계를 통해 감염된 성감염균이 여성의 골반염이나 생식기 손상으로 악화되거나, 원하지 않는 임신 및 불법낙태, 이로 인한 부작용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여성들이 원하는 시기에 임신하기 어려운 난임 및 불임 문제를 야기할 우려도 있는데, 응급피임약 복용으로 인한 2~3차 부작용이 양산되는 셈이다.
또한 성폭력 등 원하지 않는 성관계 후에는 현재도 병원 응급실 등에서 응급피임약 복용 및 필요한 조치를 받을 수 있는데, 응급피임약을 누구나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게 된다면, 성폭력 남성이 피해여성에게 강제로 응급피임약을 복용시키는 불상사도 생길 수 있다.
응급피임약은 말 그대로 응급한 때만 복용하는 약으로써 의사 처방 및 복약지도 하에 복용해야만 한다. 의사 면담 과정을 통해 정확한 복약지도가 가능하고 개개인의 피임상담과 피임교육을 통해 계획적인 사전 피임을 실천하는데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여성의 계획임신과 안전한 피임, 응급피임약 부작용, 인공임신중절 예방을 위한 홍보를 위해 2008년부터 ‘와이즈우먼의 피임생리이야기’(http://www.wisewoman.co.kr/piim365)라는 홍보사이트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올해로 9년째 네이버 지식인 파트너쉽을 통해 피임생리에 관한 질문 3만여개에 전문의 답변을 해 오고 있다. 이 밖에도 여성의 생리주기를 체크해 피임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네이버 제휴 앱 ‘핑크 다이어리’를 후원하고 있으며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다각적인 홍보 노력을 해 오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계획적인 피임에 대해 아동 및 청소년의 연령에 따른 성교육을 하는 등 실천하는 피임을 위한, 실질적인 성교육 문화 정착과 한국 여성의 건강증진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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