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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을 실천한 화약의 아버지 최무선 장군 송덕비 건립
자주국방을 몸소 실천하고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 위인
기사입력 2015-04-14 19:35 | 최종수정 04-14 20:14(편집국) | 기사 : 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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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기자] 국방부가 4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한 “화약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려 말 최무선 장군 송덕비가 4 21일 영천시 금호읍에 있는 최무선 과학기념관에서 최무선장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건립된다.

 

최무선 장군 송덕비 건립은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가야 할 젊은 세대들에게 최무선 장군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과학 기술 정신을 계승 발전 시킬 수 있는 지속적인 계기를 부여하기 위한 행사이다. 



'화포의 신' 최무선(崔茂宣·1325~1395)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화약을 발명한 고려 말 발명가이자 군인이다. 고려 말 왜구가 창궐하자 화약 제조법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중국 강남 지역에서 온 이원(李元)이라는 상인에게서 화약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염초(焰硝) 제조법을 배워 화약 개발에 성공했다.


1380년 왜구가 대거 침입했을 때 진포에서 화포· 화통 등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왜선 500여 척을 전멸시켜 대승을 거뒀다.

 

그 후 최무선이 발명한 화약과 무기는 다행히 사라지지 않고 그의 아들 최해산을 통해 조선왕조의 중요한 국방기술로 전수되었다. 세종 때에 보다 향상된 화약제조법이 나오게 된 것 또한 최무선 부자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진왜란 때 육지에서는 조총을 앞세운 왜군이 조선군을 압도했지만, 해전에서는 조선이 일본보다 화포 기술에서 앞서 있었던 것도 최무선의 화약제조 덕분이었다.

 

조선 삼도수군의 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12척의 배로 수중철책을 설치해 왜군 133척을 대파하고 승리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조선수군이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군함의 우수성이다. 군함에는 당시에 가공할만한 최신병기인 화포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화포는 최무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왜구를 물리치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최무선 장군의 지위는 지문하부사에 이르렀고 사후에는 의정부 우정승 및 영성 부원군에 추증됐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미국 사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의 한국 배치 문제로 국가 안보와 과학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자주국방을 몸소 실천하고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 최무선 장군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송덕비 건립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미디어일보 최영 기자  cynag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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