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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벌(송병민)
기사입력 2022-09-20 23:59 | 최종수정 09-21 01:03(편집국) | 기사 : 송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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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디모데전서 6장 9-10절)
     

   2007년 2월 마지막 일요일 오전, 나는 적도 근방에 있는 민다나오섬 다바오에 소재한 한 교회에 앉아 있었다. 어떤 이끌림인지 모르지만, 교회에 가게 되었고, 그날의 설교는 하필이면 ‘돈이 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부를 움켜쥐려는 마음이 강하면 마치 배가 침몰하는 것처럼 극단적인 파멸의 상태에 이르는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랑하는 마음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상태이기에, 자신을 너무 사랑하거나, 연인을 너무 사랑해도 파괴적일 수 있다.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대부분 사건도 돈 때문에 일어나기에, 돈에 대한 사랑은 더욱 파괴적인 속성을 지닌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몇 번의 카지노 게임으로 인해, 얼마의 돈을 땄다가 잃고 있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도스또예쁘스끼’가 그랬던 것처럼, 몇 번의 게임으로 쉽게 얻어지는 그런 돈벌이에 나는 길들어져 가고 있었다. 돈이 자유를 줄 것으로 믿었지만, 돈의 노예가 되어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었다.

  ’죄와 벌‘은 지식인으로 대변되는 ’라스꼴리니꼬프‘의 결핍으로 인한 분노가 가진 자로 대변되는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상대로 한 살인으로 옮겨지면서 시작된 한 인간의 고뇌와 사회적 부조리를 고발한다. 그러나 ’라스꼴리니꼬프‘의 사회에 대한 분노는 비열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영웅적인 행동으로 고려할만한 어떤 단서도 보이지 않는다. 게으르게 살면서 사회주의적 공리주의 공상에 들뜬 그의 사상은 범죄를 위한 변명을 위해 급조된 것으로 보인다. 가난하게 사는 이유를 자신의 밖에서 찾는 전형적인 외적 귀인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당신은 왜 이렇게 매일같이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거예요? 전에는 가정교사라도 하고 다니더니.” 
  “일하고 있어요. 생각하는 일”

  노동이 없는 정신 활동은 죽은 것이다. 행동이 없는 지성은 비범한 인간일 수 없다. 비범함이란 평범함이 쌓여 임계질량을 넘길 때 나오는 어떤 노련함이며, 성숙한 사고다. 결핍으로 인해 저절로 생기거나, 단 한 번 사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달걀은 스스로 알을 깨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면 프라이가 된다고 한다. ’라스콜리니꼬프‘가 쪼갠 달걀은 자신을 침몰시키는 깨짐이며, 새로 태어나는 부활을 위한 창조적 파괴가 아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스스로 비범한 인간이라 여기며, 따라서 자신은 법을 어길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범죄자가 되지 않고는 인류를 위한 건설을 할 수 없다고 항변한다.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용기가 있어야 새로운 세상이 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라스꼴리니꼬프’가 저지른 도끼 살인은 신문 사회면에 소개되는 흔한 살인사건 중 하나고, 게으른 지식인의 폭력적인 난동일 뿐이다. 더군다나 노파의 동생 ‘리자베타’에 대한 살인은 사회적 약자이자, 기독교인에 대한 살인으로, 이는 자신을 심리적 파멸로 이끄는 기폭제가 되는 동시에 ’소냐‘에게 죄를 자백하는 동인으로 이어진다.

  경험이라는 단어 ‘experience’는 주변을 넘어선다는 뜻을 내포한다. 선을 넘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것이 있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없다. 인간은 동물에서 초인으로 넘어가는 ‘중간적 존재’라고 니체가 말한 것처럼, 더 나은 존재로의 이동을 위해서는 익숙한 곳을 탈피해야 한다. 주인공은, 좁은 하숙방을 나와 다리를 건너가지만, 유토피아적 행복한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더 좁은 공간인 죽음으로 향해간다. 당장 눈앞에 좋아 보이는 목표와 기회는 신기루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많은 위험을 내포한 허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선을 넘을 때는 과감한 동시에 신중해야 한다. 쉽게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마르멜라도프’의 딸 ‘소냐’에 대한 이야기와 어머니에게서 들은 동생 ‘두쟈’의 결혼 소식은 사회 부조리에 대한 ‘라스꼴리니꼬프’의 분노를 더욱 자극하여, 살인을 위한 이동, 즉 13계단을 내려가게 만든다. 사건이 벌어지는 13일이라는 기간, 13계단, 13일의 금요일 등 숫자 13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정신적인 죽음의 이미지를 드리운다.

  살인사건 후, ‘라스꼴리니꼬프’는 사흘을 앓은 후 깨어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이어지는 같은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어머니로부터 전달받은 연금을 ‘마르멜라도프’의 장례식 비용으로 지급하며 첫 번째 선행을 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자처한 정의를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성경은 낮은 자에게 행한 행위를 ‘예수님’께 행한 것으로 인식한다. 목마른 ‘나그네’에게 물을 주는 것도 ‘예수님’께 행한 것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소냐’는 낮은 자의 전형이고 예수님을 은유한다. 그녀에게 한 자선 행위로 말미암아,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의 사랑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느낀 ‘소냐’에게 풀어내는 살인에 대한 고백은 마치 ‘신에 대한 고해성사로’로 느껴진다.

  “그럼, 나를 버리지 않는 거야, 소냐?”
  “아니에요, 절대로 언제까지나 그 어느 곳에서도 버리지 않을 거예요!”

  그냥 죄를 고백했을 뿐인데, 무한한 사랑으로 반응하는 소냐의 모습은 회개만으로도 부활에 이를 수 있는 무조건적 신의 사랑과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그러나 소냐는 한 가지 조건으로 ‘대지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네거리에 가서 사람들에게 절을 하고 대지에 키스하고 잘못을 고백하라고’ 말한다. 여기 ‘네거리’라는 공간은 간음한 여인을 벌하라는 율법 학자들의 말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라고 예수님이 말했던 그 개방된 공간과 중첩된다. 죄짓고 사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어떤 누구도 문제 삼을 수 없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 회개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 이것이 기독교식 구원의 방식임을 소냐는 일러주고 있다.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새로운 한 걸음, 자신만의 ‘새로운 말’, 이것을 제일 두려워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라스꼴리니꼬프’는 뻔한 말만 계속해서 하고 있다. 신문(News)이 전하는 소식은 시간이 지나면 생기를 잃어버리는 선형적인 사건이지만, 복음(Good news)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새롭게 다가오는 비선형적 소식이다. 같은 뉴스도 대상과 맥락에 따라 생기를 얻기도 잃기도 한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상이 탄생하였지만, 세상은 영원히 공평할 수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다. 삶은 과정이므로, 언제든지 새로움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떤 대화든 상대방이 기분 나쁘면 실패한 대화이고, 아무리 정의로운 말도 폭력적일 수 있다. 죄와 벌에서 ‘소냐’는 단 한 번도 누군가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는다. ‘창녀인 소냐’가 가장 지혜롭고 이쁜 대화를 이끌어간다. ‘새로운 말’은 결국 ‘라스꼴리니꼬프’가 하는 말이 아니라 ‘소냐가 하는 말’이다. 자신이 살고자 가족에게 돈을 빌리는 ‘라스꼴리니꼬프’가 초인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며 가족을 키운 ‘소냐’가 초인이다. 

. 돈으로 대변되는 행복, 돈 많은 ‘스미드리가일로프’와 ‘루쥔’의 파멸적인 종말을 보면 돈 많은 것이 행복이 아님을 알게 된다. 어쩌면, 단돈 25루블로 ‘소냐’를 얻게 된 ‘라스꼴리니꼬프가 최종 승자가 아닐까? 




Mov Education 대표 송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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