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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소암선생님 STORY
기사입력 2024-06-04 23:42 | 최종수정 07-03 09:21(편집국) | 기사 :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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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암 선생의 생애

습자기(習字期) [1세(1907) ~ 31세(1937)]

10, 20대 학생시기로 유년기에는 한학불경등시체(時體)중심의 글씨문장을 습득하였고, 18세(1924년) 도일(渡日)후에는 오사카도산중(桃山中) 재학시절에 습자(習字)공부를 하였고 와세다대학 졸업 후 변호사 사무실, 영화사에서 필사(筆寫) 업무를 담당한 시기이다.

Ⅱ기 학서기 [32세(1938) ~ 49세(1955)]

30, 40대 일본유학시기로 마스모토호우수이(松本芳翠)·쓰지모토시유우(辻本史邑)문하에서 11년 간 사사(師事)하며, 진(晉)·당(唐)고법으로 서해서행초는 물론 전예와 육조해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체를 습득하는 한편 녹담서원(鹿潭書院)을 개설하여 본격서가로서 토대를 닦은 시기이다.

Ⅲ기 실험기 [50세(1956) ~ 73세(1979)]

50,60대 국전시기로 1955년(49세) 귀국 후 1957년(51세)국전(國展)입선을 시작으로 1979년(73세)까지 추천·초대작가심사위원으로 작품활동을 전개한 시기이다. 이때 소암은 해서와행초서(行草書)를 강건한 획질(劃質)의 육조해(六朝楷)와 전예필법으로 혼융시켜 재해석하거나 한글을 예서와 행서필의(筆意)로 구사하면서 왕성한 실험을 감행, 한국서예 '이채(異彩)'로서 독자적인 행보를 하였다.

Ⅳ기 완성기 [74세(1980) ~ 90세(1997)]

70, 80대 '서귀소옹(西歸素翁:서방정토로 돌아가는 늙은이)'으로 자호(自號)하고 먹고 잠자는일 외 에는 오직 글씨로 독락(獨樂)·귀자연(歸自然)하며 50, 60대 소암예술을 심화 완성한 시기이다.
일상과 예술, 씀에 있어 작품과 연습의 경계도 없어진, 쓰는 것이 일상이고 일상이 곧 쓰는 것이 완성기 소암예술의 특질인데, 이 시기 소암은 개성(個性)과 전형(典型) 즉, 행초서와 육조해의 이질적(異質的) 조형요소와 미감을 하나로 혼융(混融)시켜 가히 '소암체'라 할 탈속(脫俗)과 야취(野趣)의 행초서, 파체(破體)를 완성하였다.
소암의 텍스트는 불교(佛敎)나 노장(老莊)계통 경전이나 대학(大學) 중용(中庸), 그리고 선시(禪詩)등 다분히 인간과 자연이 하나되는 경지를 노래한 것이 주를 이룬다. 이것이 곧 '도(道)'이자 '중화(中和)'이고, 또 '불이(不二)'이기도 한데, '달아 달아 밝은 달아'처럼 사형취상(捨形就象:사물의 외형을 버리고 내면의 실상을 취하는 것)하여 문자로 달을 '그리는' 것이 바로 내용과 조형이 하나되는 소암서의 참다운 경지라 하겠다.  



소암선생님 은 소박하고 검소하게 생활하셨다.
소통.인성. 제자와 소통하고 그의 큰 행복을 알기에 지금도 소암선생님 제자들은 소암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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