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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파우스트, 방황하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기사입력 2024-10-21 20:32 | 최종수정 10-21 20:48(편집국) | 기사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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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귀여운 악마를 보았다. 그의 이름은 메피스토펠레스. 비참한 나날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딱해서, 괴롭히고 싶지 않다고 한다. 세상은 어떻다는 식의 평가를 유보하는 겸손도 가졌다. 죽음을 앞둔 노인 파우스트에게 젊음을 선사하는가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규칙 없는 삶을 살라고 조언한다. 배운 것을 가르칠 때 학생들을 지루하게 하지 말라고 한다. 사랑에도 빠져보라 한다. 연예 조언에도 아주 전문적이라 성급하게 달려드는 파우스트를 잘 이끌어간다. 시간은 빨리 흐르는 것이니, 아껴 쓰라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여 시간을 벌라고 한다. 형이상학 공부를 하고 예습도 열심히 하며 종이 치면 강의실에 들어가라고 한다. 동반자가 되겠다고 하고 종이 되겠다고 한다. 파우스트의 역정에도 꿋꿋하다. 악마라고 부르려니 괜히 미안해진다.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나는 틀린다. 옳다고 믿었던 것이나, 확신을 가진 판단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내 삶의 작은 결정에 여전히 무수히 많은 실수가 쌓여간다. 온갖 감정을 쏟아내고 이내 후회한다. 온갖 박사학위를 가진 파우스트의 여행도 실수의 연속이다. 그레첸의 사랑을 얻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어머니, 오빠의 죽음은 나비효과를 닮았다. 잘하려는 노력이 삶을 미궁에 빠뜨린다. 헬레나와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끔찍한 고통을 동반한다.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았을 사건이고 감정들을 느끼게 한다. 대부분 사건은 움직여서 생긴다. 사업이 그렇고, 만남이 그렇다. 사랑의 기쁨을 누릴 생각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 가만히 있으면, 걱정거리가 적다. 그러나 주님은 말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선한 인간이란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잘 알고 있다.”

방황을 좀 할지라도 길을 잘 찾을 것이라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다. 방황하지 않으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 솟구치는 힘, 무언가를 지향하는 마음의 에너지는 원래 방향성이 없어서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는 관념 속에는 방황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내포해 있는 것이다. 자연을 이루는 사물들이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전자도 들뜬 상태에서의 방황을 마치고 원래 위치로 돌아올 때 열과 빛을 발산한다. 이때 도약하거나 하강하는 전자의 움직임은 비선형적이고, 고전 물리학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지향하는 마음에 부수하는 방황은 양자적이다.

방황이 길어지면 엔트로피는 커진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일정한 움직임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방황의 모습에 더 가깝다. 매일 뜨고 지는 해와 달의 경로보다는 새벽하늘에 갑자기 떨어지는 유성우의 길이 아름답다. 지금 이 순간,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경험한 노학자와 그의 친구 메피스토펠레스가 동행한 예측 불가능했던, 그래서 더 많은 기쁨과 슬픔, 고통이 따랐던 이들의 여행에 나는 열광한다. 

방황하지 않는 원자는 힘도, 열도, 빛도 없는 혼돈의 상태다. 그래서 마음속의 꿈틀거림으로 시작되는 많은 시도는 그 자체로서 아름다움을 연출할 준비를 하는 것이고 존재 이유가 된다. 파우스트는 말한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리고 나는 말 할 것이다.

“멈추어라. 순간아. 너 정말 아름답구나.”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순간들이 많이 쌓이면 ‘그래도 나 꽤 잘 살았구나’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송병민(minaryhouse@gmail.com)
 
약력
모브 입시컨설팅 그룹 대표
TEPS, TOEIC 등 영어책 4권 출간
모비딕 인문학, 영어 자료실 대표
모브 델리85 대표
(주)유어프렌즈 MICE 전문 여행사 이사
(주)디자인본어비디자인 그룹 CFO

학력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학사
연세대 공학대학원 석사
서울대 사범대학원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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