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간의 비화폰 통화 기록이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사태 사흘 뒤인 12월 6일 원격으로 삭제된 정황이 포착되어 경찰이 증거인멸 혐의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삭제 주체는 아직 특정되지 않았으나, 비화폰 관리 권한이 대통령 경호처에 있다는 점에서 수사의 초점이 경호처로 향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은 26일 정례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밝혔다. 특수단 관계자는 "비화폰 서버 분석 과정에서 지난해 12월 6일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의 비화폰 사용자 정보가 원격 삭제된 정황을 확인하여 지난주부터 증거인멸 혐의로 관련 수사를 개시했다"고 설명했다. 삭제된 정보는 일반 휴대폰의 초기화와 유사한 개념으로, 복구 가능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삭제가 이루어진 시점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이자,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경질 보도가 나오던 시점과 겹친다. 홍 전 1차장은 당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인 체포조'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한 바 있어, 이 시점의 비화폰 통화 기록은 '내란혐의'를 밝힐 핵심 증거로 주목되어 왔다.
특수단은 앞서 윤 전 대통령, 박종준 전 경호처장 및 김성훈 경호차장 등의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 관련 비화폰 서버 기록을 대통령 경호처로부터 임의 제출받아 분석을 진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2일마다 자동으로 삭제되던 비화폰 서버 기록을 포렌식을 통해 거의 대부분 확보했으며, 대상 기간은 지난해 12월 3일부터 올해 1월 22일까지다.
경찰은 현재 증거인멸 혐의로 수사를 개시했으나, 아직 피의자를 특정하지는 못한 상태다. 그러나 경찰 특수단 관계자가 '경호처 관련자가 삭제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것은 확인되지 않지만, 그렇게 보고 있다"고 답하면서 수사의 방향은 대통령 경호처를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화폰 관리 권한이 경호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호처 내부 인물에 의한 삭제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번 비화폰 기록 삭제 정황은 12·3 비상계엄 사태의 진실 규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경찰은 비화폰 기록 복구 작업과 함께 삭제 지시의 주체를 밝히기 위한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