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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쉰 이후, 인생은 조용히 ‘나’를 묻기 시작한다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 | 입력 26-02-12 16:07



쉰 이후, 인생은 조용히 ‘나’를 묻기 시작한다

쉰이 넘으면
인생이 갑자기 달라지는 건 아니다.
아침은 여전히 오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하루가 또 지나간다.
겉으로 보면 아무 일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의 구조가 조금씩 달라진다.
예전엔 누군가가 있었다.
기댈 수 있는 사람,
변명할 수 있는 상황,
‘아직은 괜찮다’고 말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부모가 있었고,
회사라는 울타리가 있었고,
조직이라는 이름의 보호막이 있었다.
잘되면 내 덕이었고,
안 되면 세상 탓도 할 수 있었다.

젊음은,
어쩌면 그런 핑계를 허락받는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쉰을 넘기면
그 핑계들이 하나둘 조용히 사라진다.

이제는
아무도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
상황이 알아서 좋아지지도 않고,
누군가 와서 내 삶을 정리해주지도 않는다.
돈이 있든 없든,
가족이 곁에 있든 없든,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뿐이다.

그 사실을
사람들은 늦게 깨닫는다.
정말 중요한 건
누가 내 옆에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스스로 떠안을 수 있느냐라는 것을.

그래서 쉰 이후의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가 된다.
이 나이가 되면
감정부터 달라진다.
젊을 때의 짜증은 투정이었고,
화는 혈기였고,
눈물은 이해받을 수 있는 언어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계속 화내는 사람은
그저 피곤한 사람이 되고,
냉소적인 사람은
곁에 두기 어려운 사람이 된다.
세상은 더 이상
우리 감정을 보듬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깨닫는다.
감정은 성격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책임’이라는 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인생이 먼저 무너지는 게 아니라
관계가 먼저 떠나간다는 걸.

어느 날 문득
외로움도 자연스러워진다.
전화가 줄어들고,
약속이 뜸해지고,
주말이 길어진다.
처음엔 서운하다.
‘왜 나만 혼자인 것 같지’
괜히 그런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들 자기 삶을 사느라 바쁜 것뿐이다.
누군가 떠난 게 아니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다.
그때부터 외로움은
상처가 아니라 풍경이 된다.
받아들이면 잔잔해지고,
원망하면 깊어진다.
결국 마음이 정하는 문제다.

쉰 이후에는
정답도 사라진다.
남들처럼 살면 된다는 공식도,
비교할 기준도 흐릿해진다.
그래서 더 자주 흔들린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내가 잘 가고 있나’
그때 필요한 건
남의 조언이 아니라
내 안의 기준이다.
얼마면 충분한지,
어디까지 욕심낼 건지,
누구와 함께하고
누구와 거리를 둘 건지.
이 기준이 없으면
마음이 매일 출렁인다.
체력보다 먼저
마음이 지쳐버린다.
결국 남는 건 하나다.
돈도,
직함도,

누군가의 인정도 아니다.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태도다.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것,
넘어져도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쉰 이후의 삶은
더 외로운 시간이 아니다.
더 솔직해지는 시간이다.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비로소
‘내 몫의 인생’을 조용히 붙드는 시간.
그래서 조금 쓸쓸하지만,
그만큼 단단하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우리는 알게 된다.
결국 끝까지 나와 함께 가는 사람은
세상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잔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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