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나바네템 나비 필라이 국제사법재판소(ICJ) 임시 재판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재를 강하게 비판했다.
필라이는 9일 독일 뉘른베르크 사법전당 600호 법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상을 국제 범죄의 모든 생존자들과 국제 사법의 실무자와 수호자들에게 바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국제법과 인권이 중대한 정치적 공격을 받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며 “악화되는 이런 현실은 특히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공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가자전쟁과 관련한 전쟁범죄 혐의로 이스라엘 지도부에 체포영장을 발부한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해 광범위한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
필라이는 자신이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접한 장소가 나치 전범 재판이 열렸던 역사적인 뉘른베르크 600호 법정이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내가 뉘른베르크 재판이 열렸던 이 역사적인 600호 법정에 있을 때 수상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 형사 사법을 약화하려는 지금의 시도들은 뉘른베르크 이후 공들여 이뤄낸 진보를 위협한다”며 “법이 아닌 힘이 누구의 고통이 중요한지를 결정하는 세상으로 우리를 돌려놓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필라이는 또 “그동안 모든 직책에서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 특히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대변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이 사명을 계속해야 하며 유엔 헌장에 명시된 ‘다음 세대를 전쟁의 참화로부터 구한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도 언급했다.
필라이는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인권을 보호하고 전쟁을 피하며 유엔 헌장을 현실로 만들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며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공격과 같이 불량국가들이 독단적인 행동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필라이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당시의 상황도 소개했다.
그는 크리스토프 자퍼링 뉘른베르크 원칙 국제아카데미 소장이 자신을 불러 잠시 앉아보라고 했을 때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이어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듣고 “완전히 놀라운 일이었다”고 전했다.
필라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법조인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국제 형사 사법과 인권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
유엔인권최고대표와 국제형사재판소 판사 등을 역임했으며 최근에는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 관한 유엔 독립 국제조사위원회를 이끌었다.
해당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상대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필라이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노벨위원회가 21세기 최대의 거짓말에 상을 수여했다”고 주장했다.
또 “반이스라엘 증오와 편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을 기괴하게 무기화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나치 독일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를 언급하는 거친 표현까지 사용하며 필라이의 수상을 비난했다.
필라이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미국의 국제형사재판소 제재가 맞물리면서 국제법과 전쟁범죄 책임 추궁, 국가 주권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논쟁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