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최종 3차전 한일전에서 한국이 0-1로 패하며 우승컵을 일본에 내준 가운데,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일본 축구대표팀의 첫 황금기를 이끈 필립 트루시에 전 감독이 일본의 승리 요인으로 '의도된 수비'를 지목해 주목받고 있다. 그는 단순한 피지컬 대결을 넘어 상대의 작전을 무너뜨리는 일본의 전략적인 접근이 승리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일본 매체 넘버웹은 23일 트루시에 전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한일전 분석을 상세히 전했다. 트루시에 전 감독은 당시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다음 날 녹화본을 통해 경기를 면밀히 분석했다고 밝혔다. 홍명보호는 경기 시작 8분 만에 저메인 료에게 실점한 이후 후반전 내내 일본을 몰아붙였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골문을 열지 못하며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트루시에 전 감독은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대표팀 감독이 이번 동아시안컵 팀을 오직 한국전을 위해 구성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피지컬'이었고, 일본은 이 부분에서도 충분히 대응했다. 특히 (일본) 수비진은 강인한 피지컬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이어 "일본은 한국을 상대로 철저히 수비적인 경기를 했다. 수비 라인은 단단했고, 특히 공중전에서 강했다. 수비 조직이 잘 유지됐고, 계속해서 (일정 공간에서) 압박을 걸어 상대 패스가 원활히 이어지지 않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는 모리야스 감독이 한일전 양상을 미리 예측하고, 이에 맞는 선수 선발과 전략을 치밀하게 구사했다는 트루시에 전 감독의 견해를 뒷받침한다.
트루시에 전 감독은 모리야스 감독이 "정말 신중하게 경기에 임했다"고 역설하며, "이 경기는 피지컬과 운동 능력이 필요한 매치가 될 것임을 모리야스 감독이 잘 알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비록 "명경기라고 할 수는 없었다"며, "일본은 후반전에 거의 자기 진영에 갇혔고, 상대 진영에서 플레이하기 어려웠다. 볼 소유도 힘들었고, 전방으로 나가는 장면 자체가 드물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수비 의식을 유지한 경기였고, 그 점 또한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었다. 실점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도전이며 이겨내야 할 과제"라며, "뛰어난 경기 내용이 아니었다고 해도 일본은 존재감을 보여줬고, 해야 할 일을 해내며 승리를 쟁취했다"고 일본 팀의 승리를 높이 평가했다.
한국은 동아시안컵을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을 위한 선수 테스트의 장으로 활용했으나, 트루시에 전 감독은 모리야스 감독이 한국전을 유독 철저히 준비했음을 거듭 강조했다. 일본의 우승 요인으로 다시 한번 '수비력'을 꼽은 트루시에 전 감독은 "피지컬로 상대를 이겨내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작전을 무너뜨리는 방법도 있다. 일본은 후자의 방식으로 한국을 제압했다"고 단언했다. 그는 "일본이 이길 수 있었던 건 끝까지 수비에 집중하고 강한 마음으로 버텼기 때문"이라며, "일본 선수들이 매우 강해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 공격수들은 키와 체격이 크며 경쟁심도 정말 강했다. 그런 상대와 붙어도 일본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모리야스 감독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고, 그에게 축하를 전하고 싶다. 우승이란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지금쯤 상당히 만족하고 있을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한편, 트루시에 전 감독은 이전과 비교해 변화된 한국 축구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한국은 원래 피지컬이 강점이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이 돋보였다. 섬세한 플레이도 인상 깊었다. 전체적으로 팀 밸런스도 잘 잡혀 있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한일전 3연패'를 당하면서 홍명보호를 향한 혹평이 쏟아졌고, 특히 홍명보 감독이 일본전 패배 뒤 "우리가 일본보다 더 잘했다고 생각한다"는 인터뷰로 뭇매를 맞았던 상황이어서, 트루시에 전 감독의 평가는 한국 축구 팬들에게는 더욱 아쉽게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