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22일 본회의를 열고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의 이사 수를 9명에서 13명으로 확대하고 이사 추천 주체를 다양화하는 내용을 담은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이번 법안의 통과로 지난 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소위 '방송3법'이 모두 다시 국회 문턱을 넘게 되었다.
이번 EBS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 의원들의 주도로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법안은 재적의원 180명 중 찬성 179명, 반대 1명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했다. 전날인 21일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첫 주자로 나서 13시간 넘게 토론을 이어갔으며, 이에 맞서 더불어민주당 이정헌 의원이 약 11시간 동안 반박 토론을 펼쳤다. 양측의 치열한 공방 끝에 필리버스터는 총 24시간 16분 만에 표결로 강제 종료되었다.
통과된 법안의 핵심은 EBS 이사회의 구성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것이다. 기존 9명이었던 이사 수를 13명으로 늘리고, 이사 추천권을 국회 교섭단체, 시청자위원회, 교육계 단체 등에 분산시켜 특정 정당이나 기관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는 EBS 이사회가 특정 정치 세력에 편향되지 않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됐다. 야당은 이 법안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정치적 독립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힘은 EBS법 개정안이 교육방송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EBS는 교육 콘텐츠 제작 및 제공이라는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므로,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방송법 개정안이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EBS법 개정안 외에 추가적인 법안 상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국민의힘의 전당대회가 열리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23일부터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2차 상법 개정안' 등 주요 쟁점 법안들을 순차적으로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법안들은 노동계와 경제계 간 첨예한 대립을 낳고 있어 향후 국회에서의 논쟁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EBS법 개정안 통과는 방송3법의 재통과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앞서 국회는 방송법 및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나,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바 있다. 이번에 다시 통과된 방송3법은 공영방송 이사회의 구성 방식을 변경해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려는 야당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여당의 반발이 거세 향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 여부와 정국 운영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법안의 통과로 인한 파급 효과는 교육방송뿐만 아니라 전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