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장, 금융사 지점장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연루된 1천억 원 규모의 대형 주가조작 조직이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정부는 범죄수익 은닉을 막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관련 계좌 전체에 대한 지급정지 조치를 단행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해 온 '금융범죄는 패가망신'이라는 원칙이 처음으로 적용되는 사례가 될 전망이다.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은 23일, 특정 상장사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해 230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주가조작 일당 7명의 자택과 사무실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종합병원장, 한의사, 대형 학원장 등 재력가와 유명 사모펀드 전직 임원, 금융사 지점장 등 금융 전문가들로 구성된 '엘리트 카르텔'인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해 초부터 약 1년 9개월간 법인 자금과 금융사 대출금 등 1천억 원이 넘는 자금을 동원해 치밀하게 범행을 저질렀다. 유통 주식 수가 적어 적은 금액으로도 시세 조종이 쉬운 종목을 범행 대상으로 삼고, 수만 회에 걸쳐 주식을 사고팔며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가장·통정매매' 수법을 사용했다. 금융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수십 개의 타인 명의 계좌를 이용하고 인터넷 접속 주소(IP)를 조작하는 등 지능적인 모습도 보였다.
이번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정부의 후속 조치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주가 조작에 사용된 계좌 수십 개에 대해 즉시 지급정지 조치를 내렸다. 범죄 혐의자의 계좌를 동결해 부당이득을 원천적으로 묶어두는 이 조치는 지난 4월 개정된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이다.
합동대응단은 이들에게 부당이득의 최대 2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향후 금융투자상품 거래와 상장사 임원 선임을 제한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엄격히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주가조작으로 얻은 이익보다 더 큰 손해를 보게 만들어, 다시는 자본시장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