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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영업자들의 금융권 대출이 2분기 말 기준 1070조원에 육박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소비 위축 속에서 영세 자영업자의 대출이 빠르게 늘었고, 연체율은 1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국은행은 자영업 취약차주를 경제 전반의 ‘뇌관’으로 지목하며, 정부 차원의 구조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12일 한국은행이 국회 양부남·박성훈 의원에게 제출한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의 금융권 대출 잔액은 1069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1분기(1067조6000억원)보다 2조원 늘어나며 2012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한은은 자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약 100만 명 패널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사업자 대출과 가계대출을 모두 보유한 차주를 자영업자로 분류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사업자대출은 723조3000억원, 가계대출은 346조3000억원으로, 두 부문 모두 역대 최대 수준이다.
다중채무자(3개 이상 금융기관 대출 보유자)의 대출 잔액은 750조500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2조8000억원 줄었다. 그러나 이들의 1인당 평균 대출액은 4억3000만원으로 네 분기 연속 동일했다. 차주 수가 175만7000명에서 173만8000명으로 감소하면서 구조적으로 ‘한계상태’에 머무는 차주 비율이 여전히 높다는 분석이다.
전체 자영업자의 연체액(1개월 이상)은 2분기 말 19조원으로, 1분기(20조1000억원)보다 1조1000억원 줄었다. 연체율은 1.88%에서 1.78%로 다소 낮아졌으나, 저소득층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악화됐다.
소득 하위 30%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은 141조3000억원으로 1분기보다 3조8000억원 늘어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중소득층(191조원→189조8000억원)과 고소득층(739조2000억원→738조5000억원)의 대출은 각각 감소했다.
저소득층의 연체율은 2.07%로 1분기보다 0.15%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2013년 3분기(2.84%) 이후 11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이들의 대출은 은행보다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급증했다. 은행권 대출은 81조2000억원, 상호금융 대출은 48조8000억원으로, 각각 1조3000억원과 2조5000억원 증가했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취약차주의 연체 진입률과 지속률이 모두 오르면서 부실화가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확산·장기화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금리 인상과 소비 둔화, 경기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자영업자의 상환 여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자영업 부문의 부실 확대가 금융권 전반의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다중채무자 비율이 높고, 대출의 상당 부분이 담보 대신 신용 위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경기 회복 지연이나 추가 금리 인상 시 연체율이 급등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한은은 자영업자 소득 회복과 부실 방지를 위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취약차주 맞춤형 채무조정 ▲한계 자영업자에 대한 긴급 금융지원 ▲지역 기반 상권 회복 지원책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 유동성 지원만으로는 근본적 해법이 되지 않는다”며 “자영업 구조조정과 업종 전환, 기술 기반 창업 지원 등 장기적 자생력 강화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영업 부문은 코로나19 이후 급격한 부채 확대로 이미 금융 시스템의 취약 고리로 지목되어 왔다. 이번 통계는 단기 경기 둔화가 다시금 자영업자의 신용위험을 자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