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적법한 절차를 어기고 확보한 이른바 "위법수집증거"를 토대로 법정에서 받아낸 진술은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뇌물공여 및 수수 혐의로 기소된 환경자문업체 대표 A씨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관계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위법하게 수집된 1차 증거와 그에 파생된 2차 증거 사이의 인과관계를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9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환경부 특별사법경찰관은 환경시험검사법 위반 혐의로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 하던 중, 영장 범위를 벗어난 별개의 뇌물 혐의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수사를 확대해 A씨 등을 재판에 넘겼고, 피고인들은 1심 과정에서 관련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압수된 휴대전화 속 전자정보가 영장주의를 위반한 "위법수집증거"라는 점은 인정했으나, 피고인들이 공개 법정에서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은 상태로 행한 "법정진술"은 증거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하급심은 위법한 압수수색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피고인들이 자발적으로 진술했다는 점에서 위법성과 진술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되거나 희석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법정진술 역시 위법하게 수집된 전자정보를 기초로 획득한 2차적 증거"라며, 단순히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았거나 시간이 지났다는 사정만으로 인과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가 수사 개시의 결정적 단서가 되었거나 사실상 유일한 핵심 증거일 경우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피고인이 수사 단계에서 이미 위법 증거를 전제로 신문을 받았다면, 법정에서의 진술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이는 이른바 "독수독과(毒樹毒果, 독이 든 나무에서 독이 든 열매가 열린다)"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여, 수사기관의 편의적인 위법 수사 관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사법부의 의지로 풀이된다.
이번 판결은 향후 디지털 포렌식 등 전자정보 압수수색 과정에서 영장 범위를 엄격히 준수해야 함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수사기관이 별건 수사를 위해 확보한 위법 증거가 있다면, 피고인이 법정에서 혐의를 시인하더라도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피고인의 자백이 있더라도 그것이 위법한 절차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사법 정의를 위해 배제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사례"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