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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름값의 경고…지금은 시장이 아니라  국가의 시간이다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 | 입력 26-03-09 14:09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석유 최고가격제를 과감히 시행하고 매점매석을 엄정 제재하겠다”고 밝힌 발언은 단순한 정책 메시지를 넘어선다. 그것은 오늘의 경제 상황이 얼마나 긴박한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위기의 순간에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드러낸 선언이기도 하다.

세계 경제는 지금 다시 한 번 거센 파도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중동 정세의 불안과 국제 에너지 시장의 요동, 그리고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겹치며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원자재 가격 상승을 넘어 곧바로 민생 물가로 이어진다. 

휘발유 가격이 오르면 물류비가 상승하고, 물류비가 오르면 식료품과 생필품 가격이 따라 오른다. 결국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은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이다.

석유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산업과 경제를 움직이는 ‘혈관’과도 같은 존재다. 공장이 돌아가고, 트럭이 도로를 달리며, 도시의 불빛이 켜지는 모든 과정 속에 석유는 흐르고 있다. 

그렇기에 기름값의 급등은 특정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전반의 체온을 흔드는 변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꺼내든 ‘석유 최고가격제’는 시장 자유를 중시하는 경제 구조 속에서는 다소 강한 정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아도 위기의 순간마다 국가는 시장을 완전히 방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장이 공포와 불안에 흔들릴 때 국가는 질서를 지키는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경제학은 종종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지만, 현실의 시장은 언제나 이상적인 균형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특히 에너지와 같은 전략 자원의 경우 투기와 불안 심리에 의해 가격이 급격히 왜곡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개입은 시장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 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작동한다.

이번 조치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메시지는 ‘매점매석에 대한 엄정 제재’다. 경제 위기 속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 위기를 이용한 시장 교란 행위다. 

특정 세력이 공급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거나 사재기를 통해 가격을 끌어올리는 순간, 시장은 더 이상 자유 경쟁의 공간이 아니라 불공정한 투기의 장이 된다.

국가가 이러한 행위를 단호하게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단순한 규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공정한 시장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 선언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이 전달하는 신호다. 경제는 숫자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기대와 심리, 그리고 신뢰가 시장을 움직인다. 

정부가 물가 안정 의지를 강하게 보일 때 시장의 불안 심리는 일정 부분 진정된다. 반대로 정책이 늦어지거나 메시지가 흔들리면 시장은 그 공백을 불안과 투기로 채우게 된다.

지금 정부가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속도와 일관성이다. 위기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국제 유가가 오르고 시장 심리가 흔들리는 순간 정책 대응이 늦어지면 가격 상승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석유 최고가격제 검토는 단순한 가격 정책을 넘어 시장 안정에 대한 선제적 신호라 볼 수 있다.

물론 가격 통제 정책이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시장 경제의 기본 질서는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 그러나 비상 상황에서는 일시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시장을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수많은 위기를 통과해 왔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까지 우리는 여러 번의 거대한 충격을 경험했다. 그때마다 중요한 것은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읽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정치의 역할이었다.

경제 정책은 결국 국민의 삶을 위한 것이다. 숫자로 표현되는 성장률이나 물가 지표 뒤에는 실제 사람들의 하루가 존재한다. 출근길에 차를 몰고 나서는 직장인, 물건을 싣고 전국을 달리는 화물차 기사, 생계를 위해 가게 문을 여는 자영업자들의 삶이 바로 그 지표 속에 담겨 있다.


기름값은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움직이는 ‘민생의 온도계’다. 그 온도가 급격히 올라갈 때 국가는 그 열을 식히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념적 논쟁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응이다. 시장의 자율성과 국가의 책임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위기의 순간에는 두 가치가 균형을 이루며 함께 작동해야 한다.

석유 최고가격제 논의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국가는 언제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가.
답은 분명하다. 국민의 삶이 흔들리고 경제의 기반이 위협받는 순간, 국가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그때가 바로 시장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나설 시간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또 하나의 시험대 위에 서 있다. 기름값의 경고는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 더 큰 불안의 전조일 수 있다. 

그리고 그 경고 앞에서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방향도, 민생의 안정도 달라질 것이다.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 있는 결단이다.
지금은 분명, 시장이 아니라 국가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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