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 뉴욕 나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외국 기업의 뉴욕 증시 기업공개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로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상장 첫날 주가가 공모가보다 12% 넘게 오르며 글로벌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
SK하이닉스는 11일 뉴욕 나스닥에서 상장 기념 행사를 열었다. 현장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회사 임직원들이 참석해 거래 시작을 알렸다. 이번 상장은 미국 시장에서 진행된 외국 기업 기업공개 중 사상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미국 기업까지 포함해도 최근 상장한 스페이스X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규모다.
SK하이닉스는 전체 주식의 2.5%를 새로 발행해 예탁기관에 맡기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 투자자들이 사고팔 수 있는 예탁증서를 발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한국 증시를 통해 접근해야 했던 글로벌 투자자들은 달러로 SK하이닉스 주식을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됐다.
곽노정 대표이사는 “투자자들이 더 접근하기 쉬워졌다”며 “전 세계 투자자들이 저희 여정에 함께 하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나스닥 상장은 단순한 해외 증시 입성이 아니라,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투자 기반을 넓히는 조치로 해석된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상장을 통해 우리 돈으로 약 40조 원을 확보하게 됐다. 회사는 조달한 자금을 국내 공장 건설과 시설 투자 확대에 우선 사용할 계획이다. 고대역폭메모리, 이른바 HBM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생산능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최태원 회장은 인공지능 투자 수요를 맞추기 위해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어떻게든 가능한 한 빨리 늘려야 한다”며 “최대의 투자를 한국에 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내 투자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며 국내외 투자 확대 가능성을 함께 언급했다.
이번 상장은 SK하이닉스가 AI 메모리 시장에서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시점에 이뤄졌다. 생성형 AI 확산 이후 데이터센터와 AI 가속기 수요가 늘면서 HBM은 반도체 시장의 핵심 제품으로 떠올랐다. SK하이닉스는 HBM 분야에서 글로벌 주요 고객사를 확보하며 시장의 관심을 받아 왔다.
상장 첫날 주가 흐름도 강했다. SK하이닉스 나스닥 주가는 공모가보다 12.7% 상승했다. 국내 주가와 비교하면 한 주당 15% 이상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 셈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가치를 다시 평가받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상장 첫날의 급등을 장기 흐름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대형 기업공개 직후에는 초기 수급과 투자자 관심이 주가를 크게 움직일 수 있다. 실제 기업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향후 실적, HBM 공급 확대, 고객사 수요, 글로벌 반도체 경기 흐름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국내 증시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경우 국내 반도체주 투자심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나스닥 주가가 국내 주가보다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면 국내 투자자들의 가격 재평가 요구도 커질 수 있다.
SK하이닉스 측은 국내 증시에서 액면분할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주가 수준이 높아 개인 투자자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액면분할 논의는 국내 투자자 기반 확대와 연결될 수 있다.
이번 나스닥 상장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직접 평가받는 첫 대형 무대다. 40조 원 규모의 조달 자금이 국내 생산설비와 HBM 증설로 이어질 경우 AI 반도체 경쟁은 한층 속도를 낼 수 있다. 상장 첫날의 흥행이 일회성 관심에 그칠지, SK하이닉스의 글로벌 가치 재평가로 이어질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
주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