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기 사건을 일반 살인 혐의로 검찰에 넘기는 과정에서 경찰 지휘부가 강간살인 혐의 적용을 막았다는 내부 진술이 나왔다.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광주경찰청장실과 광주 광산경찰서장실 등을 압수수색하며 초기 수사 지휘라인의 개입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12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팀은 장윤기 사건을 수사했던 광산경찰서 실무진으로부터 당시 강간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보고했지만 경찰서장을 포함한 윗선이 제동을 걸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광산경찰서는 지난 5월 장윤기를 일반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장윤기가 범행 직전 여고생을 차량으로 끌고 가려 한 행동 등 성범죄 목적을 의심할 정황이 있었지만, 경찰은 외국인 여성에게 구애를 거절당한 뒤 화풀이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 내부에서는 성범죄 목적과 살인의 연관성을 따져 강간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무진이 해당 의견을 보고하자 윗선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일반 살인 혐의로 송치하는 방향이 정해졌다는 것이 특별수사팀이 확보한 진술의 핵심이다.
강간살인죄는 강간이나 강제추행 등 성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경우 적용된다. 일반 살인죄보다 법정형이 무겁다. 실제 혐의 적용을 위해서는 장윤기가 성범죄를 실행하려 했거나 그 목적 아래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특별수사팀은 혐의 결정 과정뿐 아니라 장윤기의 주거지에서 발견된 물품을 압수하지 않은 경위도 조사하고 있다. 당시 수사팀은 장윤기의 자취방에서 신체 일부가 훼손된 리얼돌 등을 발견했지만 압수하지 않았고, 이후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의 부친이 이를 폐기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팀 관계자들은 광산경찰서장이 당시 현장 인근에서 수색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으며, 리얼돌을 압수하지 않은 과정도 알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장이 핵심 증거로 거론되는 물품의 존재와 처리 과정을 어디까지 인지했는지가 수사의 또 다른 축이다.
경찰은 지난 11일 광주경찰청 3곳과 광산경찰서 2곳, 당시 수사에 관여한 관계자들의 현재 사무실 등 모두 7곳을 압수수색했다. 광주경찰청장실과 광산경찰서장실도 대상에 포함됐다. 특별수사팀은 사건 지휘 과정이 담긴 보고 문서와 전자정보, 관계자 간 연락 내역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범위가 실무자를 넘어 지휘부로 확대되면서 특별수사팀 조직도 수사단 규모로 커졌다. 경찰은 이미 장윤기 사건 수사팀장을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당시 형사과장과 경찰서장 등 지휘라인이 혐의 결정과 증거 처리에 관여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광산경찰서장은 윗선 개입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수사 당시 형사과장으로부터 "정황 증거만으로 강간살인죄를 적용하기 어렵고 남은 구속 기간이 짧아 일반 살인 혐의로 송치하겠다"는 보고를 받았을 뿐, 강간살인 혐의를 적용하지 못하도록 막은 사실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윤기 주거지 압수수색과 증거물 처리 과정에도 구체적으로 지휘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현재까지는 수사팀 내부 진술과 당시 지휘부의 해명이 맞서고 있다. 강간살인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판단이 수사 자료에 따른 정상적인 법률 검토였는지, 지휘부가 현직 경찰관 가족이 연루된 사건을 축소하려 압력을 행사했는지는 압수물 분석과 관계자 조사로 가려져야 한다.
초기 혐의 판단과 증거물 미압수, 장윤기 부친에 대한 수사 정보 전달 의혹이 하나의 지휘 체계 안에서 이어졌는지도 확인 대상이다. 단순한 현장 수사팀의 판단 착오인지, 경찰 조직의 보고라인이 사건 처리 방향을 바꾼 것인지가 이번 강제수사의 핵심 쟁점으로 남았다.
최예원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