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이 핵심 사업을 자회사로 분리한 뒤 다시 증시에 올리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에 제동이 걸린다. 물적분할로 설립한 자회사를 상장하려면 모회사 주주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모회사 이사회는 일반주주에게 미칠 영향과 보호 방안을 사전에 공개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정례회의에서 중복상장 제도 개선을 위한 한국거래소 상장규정과 공시규정 개정안을 승인했다. 개정 규정과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은 3일부터 시행되며, 시행일 이후 자회사가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하는 경우부터 적용된다.
중복상장은 상장된 모회사가 지배하는 비상장 자회사를 별도로 증시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기업에는 자회사 투자자금 확보와 사업가치 평가라는 장점이 있지만, 모회사 주주는 기존에 투자한 핵심 사업의 가치가 자회사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주가 하락과 지분가치 희석을 겪을 수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새 기준은 중복상장을 전면 금지하지 않고 일반주주 보호와 자회사의 독립성이 확보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거래소는 상장을 추진하는 자회사가 모회사와 별도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지, 주요 경영 사항을 독자적으로 결정하는지 등을 상장 심사에서 따진다.
모회사 이사회에도 주주 보호를 위한 5대 의무가 부과된다. 이사회는 자회사 상장이 모회사 주주에게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현금·현물배당, 자사주 소각 등 구체적인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후 주주와 소통하거나 동의 여부를 확인한 뒤 자회사 상장에 대한 찬반을 결의하고, 그 결과를 자회사에 통지·공시해야 한다.
이 과정은 독립적인 특별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거친다. 최종안에서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독립이사가 맡고, 독립이사와 독립외부위원이 전체 위원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도록 기준을 강화했다. 자회사 상장 결정이 지배주주나 경영진의 판단만으로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물적분할로 만들어진 자회사는 모회사 주주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상장이 허용되지 않는다. 주주동의 여부를 판단할 때는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 활용되는 "3%룰"을 준용한다. 주주가 지분을 3% 넘게 보유하더라도 의결권은 3%까지만 인정되며, 참여 주식 과반과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동의가 성립한다.
물적분할이 아닌 일반 자회사는 주주동의를 받으면 주주 보호 노력을 충분히 이행한 것으로 인정된다. 동의를 받지 않았다고 상장이 곧바로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거래소가 자금조달 필요성과 지분 희석 정도, 상장 목적, 주주 보호 방안 등을 개별적으로 심사한다.
다만 자회사의 자산과 매출, 영업이익 비중이 모회사 대비 모두 10% 미만인 저비중 자회사는 주주동의 절차가 면제될 수 있다. 세 항목이 기준에 해당하더라도 예상 기업가치 등을 고려해 모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되면 면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부동산투자회사 등 거래소 규정상 집합투자증권에 해당하는 증권의 상장도 적용 대상에서 빠진다.
자회사의 독립성 심사도 강화된다. 자회사 매출이나 매입의 50% 이상이 모회사에서 발생하면 영업 독립성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다. 모회사 임직원의 자회사 임원 겸직 여부와 자회사가 독자적인 인사·경영관리 조직을 갖췄는지, 투자와 자금조달 결정을 자체적으로 내리는지도 심사 대상이다.
모회사가 주주 영향 평가와 보호 방안 마련 등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자회사를 상장하면 최대 10억원의 상장계약 위약금과 매매거래정지 조치를 받을 수 있다. 공시 의무 위반으로 벌점이 누적될 경우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
최종안 확정 과정에서 기업계는 물적분할 이후 상당한 기간이 지난 자회사에는 주주동의를 면제하고 일반적인 보통결의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투자업계는 물적분할 여부와 관계없이 중요한 자회사의 중복상장에는 주주동의를 의무화하고 일반주주만으로 표결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맞섰다. 금융당국은 물적분할 자회사에 대한 주주동의 의무와 3%룰을 유지하되, 전자투표는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으로 확정했다.
새 규정이 시행되면 기업은 자회사 상장으로 확보할 자금뿐 아니라 모회사 주주가 입을 손실과 이를 보완할 방안까지 심사대에 올려야 한다. 다만 물적분할이 아닌 일반 자회사는 주주동의 없이도 개별심사를 거쳐 상장할 수 있어, 거래소가 주주 보호 노력을 어느 수준까지 요구할지가 제도의 실효성을 가를 쟁점으로 남았다.
주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