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으로 요양하던 광산 근로자가 사망하기 전 만성폐쇄성폐질환 진단도 받았더라도, 두 질환의 증상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면 만성폐쇄성폐질환에 대한 장해급여를 곧바로 지급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는 A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미지급 보험급여 청구 부지급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주심은 오석준 대법관이다.
A 씨의 배우자 B 씨는 무연탄 광업소에서 17년 9개월 동안 채탄 작업을 했다. 2019년 9월 폐암 진단을 받고 요양하던 중 이듬해 5월 숨졌다. 사망진단서에 적힌 직접 사인은 폐암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폐암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유족인 A 씨에게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했다. 이후 A 씨는 B 씨가 사망 전 받은 심폐기능검사 결과를 근거로 만성폐쇄성폐질환에 대한 장해급여도 지급해야 한다며 공단에 미지급 보험급여를 청구했다.
공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0년 3월 실시된 검사만으로 장해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고, 당시 폐 기능 저하가 만성폐쇄성폐질환뿐 아니라 폐암과 천식 등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다.
A 씨는 2024년 2월 다시 보험급여를 청구했지만 공단이 같은 취지로 거절하자 행정소송을 냈다.
쟁점은 B 씨의 만성폐쇄성폐질환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장해급여를 받을 수 있는 "치유된 상태"에 이르렀는지였다. 장해급여는 부상이나 질병이 완치됐다는 뜻뿐 아니라 치료 효과를 더 기대하기 어렵고 증상이 고정돼 노동 능력이 영구적으로 줄어든 경우에도 지급된다.
1심은 B 씨가 심폐기능검사를 받을 당시 만성폐쇄성폐질환의 치료 효과를 더 기대할 수 없고 증상이 고정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A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2심은 판단을 뒤집었다. 만성폐쇄성폐질환은 적절한 치료를 받더라도 폐 기능이 점차 악화할 수 있는 질환이지만, 치료 효과를 더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면 장해급여 지급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다시 1심에 가까운 판단을 내렸다. 같은 신체 부위에 두 가지 이상의 업무상 질병이 발생했고 각 질환의 증상이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다면, 한 질병의 치료가 계속되는 동안 다른 질병만 별도로 치유됐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B 씨가 사망할 때까지 폐암 치료를 위한 요양 상태에 있었고, 폐암 진단 후 사망까지의 기간도 약 8개월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폐암 치료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동일한 폐에 발생한 만성폐쇄성폐질환의 증상만 고정됐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법리 오해가 있다고 봤다.
폐암과 만성폐쇄성폐질환은 모두 호흡곤란과 폐 기능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두 질환으로 인한 증상을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분리할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이번 판결이 폐암 치료를 받는 모든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의 장해급여 청구를 일률적으로 막는 것은 아니다. 두 질환의 발생 부위와 증상이 겹치는지, 다른 질환의 치료가 계속되고 있는지, 각 질환으로 인한 장해를 별도로 판정할 의학적 자료가 있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파기환송심에서는 B 씨의 폐 기능 저하가 폐암과 만성폐쇄성폐질환 가운데 어느 질환에서 비롯됐는지, 사망 전 만성폐쇄성폐질환의 치료가 실제로 끝난 상태였는지를 다시 심리하게 된다. 치료가 끝나지 않은 질환과 별도의 장해를 어디까지 나눠 인정할 수 있는지가 남은 쟁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