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기 사건의 부실수사 의혹을 조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단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를 압수수색했다. 현장 수사팀을 넘어 당시 사건 보고를 받은 경찰 지휘부까지 강제수사 대상에 포함되면서 수사는 분리수사 지시가 내려진 경위와 책임 소재를 밝히는 단계로 확대됐다.
경찰청 장윤기 사건 관련 진상규명 특별수사단은 21일 오전 7시30분부터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강력범죄수사과 사무실 등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특별수사단은 "장윤기 사건 수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보고 및 지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압수수색"이라고 설명했다. 수사단은 당시 국수본과 광주경찰청 사이에 오간 보고서와 업무지시 문건, 전자정보 등을 확보해 분석할 예정이다.
이번 압수수색은 장윤기의 여고생 살인 사건과 앞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을 분리해 수사하라는 지시가 국수본에서 내려왔다는 당시 경찰관들의 증언이 나온 직후 이뤄졌다.
장윤기는 이채원 양을 살해하기 이틀 전인 지난 5월 3일 동남아시아 국적의 여성 지인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일선 수사 관계자들은 두 사건을 합쳐 수사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국수본과 광주경찰청의 지침에 따라 살인 사건은 형사과가, 성범죄 사건은 여성청소년과가 각각 맡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광주 광산경찰서 형사과장 측도 살인 사건과 과거 성범죄 사건을 병합해 수사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국수본이 광주경찰청을 통해 별도로 수사하도록 지시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수사단은 이번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실제 지시가 있었는지, 지시가 내려왔다면 누가 어떤 판단을 거쳐 결정했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두 사건이 분리되면서 장윤기의 범행 동기와 성범죄 전력, 범행 전후 행적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살인 사건 수사팀이 장윤기의 휴대전화 등에서 피해자를 범행 전부터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을 확보하고도 이를 충분히 수사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특별수사단의 조사 대상이다.
특별수사단은 장윤기의 차량에서 발견된 케이블타이 등 주요 물품을 증거물로 확보하지 않은 경위와 성범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수사 과정에서 묵살됐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당시 수사 관계자들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수사를 유도했는지, 경찰 가족과의 관계가 수사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조사 중이다.
장윤기는 지난 5월 5일 광주에서 고등학교 2학년 이채원 양을 성폭행할 목적으로 뒤따라가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장윤기는 수사 초기 피해자가 여성인 줄 몰랐다는 취지로 계획범행을 부인했지만 지난 13일 열린 두 번째 재판에서 성범죄 목적의 살인이라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특별수사단의 수사는 당초 광산경찰서 현장 수사팀의 증거 미확보와 보고 누락 의혹에서 시작됐다. 국수본 압수수색으로 당시 경찰 지휘부의 판단 과정까지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분리수사 결정이 단순한 업무 배분이었는지, 사건의 실체 규명을 가로막은 지시였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남게 됐다.
백설화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