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기 사건의 초기 수사 과정에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성범죄 사건과 여고생 살인 사건을 나눠 수사하도록 지시했다는 내부 증언과 메신저 기록이 나왔다. 검찰과 경찰은 국가수사본부를 동시에 압수수색하며 당시 보고·지휘 체계 확인에 나섰다.
광주지검은 2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강력범죄수사과와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경찰청 장윤기 사건 특별수사단도 약 1시간 뒤 같은 부서에 수사관을 투입했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약 14시간, 경찰의 압수수색은 16시간 넘게 이어졌다. 수사팀은 사무실 컴퓨터와 전자문서, 회의 자료, 보고서, 메모지 등을 확보했다. 국수본 소속 경찰관들의 휴대전화는 검찰이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강제수사는 장윤기가 여고생을 살해하기 전 베트남 여성을 상대로 저지른 성범죄·스토킹 사건과 살인 사건을 별도로 수사하게 된 경위를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두 사건의 피의자가 같은데도 수사 부서가 나뉘면서 범행 동기를 연결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고, 경찰이 당초 장윤기에게 성범죄 목적 살인이 아닌 단순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광주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계가 광산경찰서 여청수사팀에 보낸 내부 메신저에는 "베트남 여성 스토킹과 성범죄 사건은 광산서 여청에서 수사하라는 국수본 지시"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지시는 장윤기 사건의 검찰 송치를 이틀 앞두고 전달됐다.
성범죄 사건 수사는 지시가 내려진 다음 날부터 본격화됐다. 광산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은 경북 칠곡에 있던 베트남 여성 피해자를 조사했다. 사건 발생 후 열흘 가까이 별다른 조사가 진행되지 않다가 분리 지시 직후 수사가 시작된 셈이다.
당시 광산경찰서 형사과장 측은 두 사건을 함께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광주경찰청 강력계를 통해 세 차례 전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장윤기의 성범죄 전력과 살인 사건을 병합해야 범행 목적을 밝힐 수 있다는 취지였다.
경찰 특별수사단은 현재까지 국수본 관계자를 피의자로 입건하지 않은 상태다.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당시 지휘·보고 과정에 관여한 경찰관들을 불러 분리수사 지시의 작성자와 승인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를 받는 당시 광산경찰서 형사과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법원은 주요 증거가 확보됐고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크지 않으며 일부 사실관계와 법리 판단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전 형사과장은 영장심사에 출석해 자신과 상급자가 부당한 수사 지시를 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부실수사 논란이 발생한 데 대해 피해자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경찰 특별수사단은 영장 기각 사유를 검토한 뒤 추가 신병 확보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수사기관은 분리수사 지시가 단순한 업무 배당이었는지, 장윤기의 성범죄 목적을 규명하는 수사를 가로막은 지휘였는지를 가려야 한다. 국수본이 실제로 어떤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는지 확인되지 않으면 초기 수사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논란은 경찰 내부를 넘어 수사 지휘 체계 전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