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정부의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를 노사 교섭 의제로 다루겠다고 밝힌 데 대해 기업의 투자 결정 자체를 노동쟁의 대상으로 삼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대통령은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광주 군공항에 반도체 공장을 만든다고 하니까 기존 노조에서 노사 협상을 해야 할 대상이고 노동쟁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하면 끝이 없다. 일정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노조가 공장 신설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는 취지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논란의 범위를 짚었다. 이어 "국민들께서 깜짝 놀라고 있다"며 기업의 공장 건설 결정이 파업이나 쟁의의 직접적인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정부가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쟁점은 기업의 경영상 결정과 근로조건 변경의 경계를 어디에 둘지다. 삼성전자 노조는 호남권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이 들어서면 기존 사업장 근로자의 전환배치와 근무지, 처우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교섭 대상에 포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해석을 폭넓게 적용할 경우 대부분의 경영 판단이 노사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광주에 공장을 지으면 내가 그때 전보될 수 있으니 노동쟁의 대상이라는 주장인 것 같다"며 "그렇게 따지면 모든 회사의 경영권 행사 가운데 관련 없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경영권 매각도 새 사업주가 근로조건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쟁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상속이나 투자 결정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사회적 타당성에 대한 논쟁과 별개로 실제 파업 사유가 될 수 있는지는 노동법상 기준을 통해 가려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삼성전자의 광주 반도체 공장 투자 결정은 노동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놨다. 김 장관은 "삼성전자가 광주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경영상의 결정 자체를 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공장 건설 결정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로조건 변화를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용인이나 수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가 광주로 전보될 가능성만을 근거로 아직 실행되지 않은 투자 결정 자체를 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개정 노동조합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앞서 기업 투자와 공장 증설, 합병·분할·양도 등 사업 경영상 결정 그 자체는 근로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워 교섭 및 쟁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투자 결정이 실제로 집행되면서 전환배치나 근무지 변경, 임금·근로시간 변동이 발생하면 해당 근로조건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는 지난 13일 입장문을 통해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를 2027년 교섭 의제로 다루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조합원 설문조사에서 반대 응답이 84%에 달했다며 수만 명의 근무지와 처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인 만큼 추진 과정에 노조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개정 노동조합법에 따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 결정도 교섭 대상이 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기업의 투자 결정과 그 결정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근로조건 변화를 분리해 판단해야 한다며 확대 해석에 제동을 걸었다.
이 대통령은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일정 부분을 성과급 재원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요구한 사안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의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해당 요구가 노동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쪽에 무게를 두면서도 개인적 견해라고 전제했다.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싼 논란은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경영상 결정과 노동쟁의의 경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첫 사례 가운데 하나가 됐다. 투자 결정은 제외하되 실제 전보와 처우 변경은 교섭 대상으로 인정한다는 정부 해석이 향후 기업 투자와 노사 협상 현장에서 어떤 기준으로 적용될지가 남은 쟁점이다.
박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