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의 이른바 "명태균 여론조사 비용 대납" 사건 항소심에서 1심에 제출되지 않았던 통화 녹음파일이 공개됐다. 오 시장 측은 후원자가 독자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지만, 특검팀은 파일의 원본성과 수정 흔적을 문제 삼으며 신빙성을 다퉜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16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 시장과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의 항소심 속행 공판을 열었다.
이날 법정에서는 오 시장의 오랜 후원자로 알려진 사업가 김한정 씨와 명태균 씨가 2021년 3월 나눈 통화 녹음파일 3건이 재생됐다. 당시 오 시장은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선출된 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녹음에는 김 씨가 명 씨에게 "이 양반 돕고 싶어서 내가 일을 했잖아", "거기서 원해, 원한 것도 아니고 내 혼자 해가지고"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 명 씨도 김 씨와 오 시장의 관계를 잘 몰랐고 오 시장이 직접 김 씨를 소개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말했다.
오 시장 측은 이 대화가 여론조사 의뢰와 비용 지급 과정에 오 시장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김 씨가 오 시장이나 선거캠프의 요청을 받지 않고 스스로 명 씨에게 여론조사를 맡겼다면, 오 시장이 조사를 의뢰하고 비용을 대신 내도록 했다는 공소사실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김 씨 측은 명 씨가 재판에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는 것을 보고 과거 통화 녹음의 존재를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이후 제주도 별장 창고에 보관돼 있던 옛 휴대전화에서 녹음파일을 발견해 재판부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해당 파일은 명 씨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기 위한 탄핵증거로 제시됐다.
특검팀은 파일의 생성과 보관 과정을 문제 삼았다. 일부 자료가 원본 파일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고, 사건 관련 언론 보도가 나온 2024년 11월 18일 무렵 수정된 흔적도 발견됐다는 주장이다. 특검팀은 파일이 뒤늦게 제출된 경위까지 고려하면 편집이나 조작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증거 가치를 낮게 평가해야 한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녹취 내용이 반드시 오 시장 측 주장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김 씨가 "오세훈은 조작해달라고 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한 부분을 두고, 오 시장 본인은 아니더라도 당시 참모였던 강 전 부시장이 여론조사 결과 조작을 요구했다는 의미로 읽힐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우선 녹음파일을 명 씨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기 위한 탄핵증거로 채택했다. 탄핵증거는 녹음 내용 자체를 공소사실을 인정하거나 뒤집는 직접 증거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법정 진술이 믿을 만한지를 판단하는 데 활용된다. 이에 따라 파일의 원본성뿐 아니라 전체 대화의 맥락과 명 씨의 기존 진술이 서로 일치하는지가 항소심 판단의 쟁점이 됐다.
오 시장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명 씨로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받은 뒤 김 씨에게 비용 3천300만원을 대신 지급하게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함께 기소된 강 전 부시장은 조사 진행과 비용 지급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1심은 검찰이 제시한 여론조사 10건 가운데 5건을 오 시장이 의뢰했고 김 씨가 비용 2천100만원을 부담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오 시장에게 벌금 1천만원과 추징금 2천100만원을 선고했다. 강 전 부시장과 김 씨에게는 각각 벌금 300만원과 500만원이 선고됐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오 시장은 시장직을 잃고 일정 기간 공직 취임이 제한된다. 다만 현재는 항소심이 진행 중이어서 1심 형이 확정된 상태는 아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음 달 2일 변론을 종결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새 녹음파일과 기존 증언의 관계, 파일의 원본성 및 수정 경위, 오 시장과 강 전 부시장이 여론조사 의뢰와 비용 지급 과정에 실제로 관여했는지를 종합해 판단하게 된다.
백설화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