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20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해 발생한 재산 피해를 대한민국 정부에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정부가 북한 당국을 상대로 직접 제기한 첫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북한의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는 16일 대한민국 정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북한이 정부에 약 446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소송은 북한이 2020년 6월 16일 개성공단에 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따른 것이다. 폭발로 연락사무소 청사가 무너졌고 인접한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같은 해 9월 문을 열었다. 남북 당국자가 상주하며 연락과 협의를 이어가는 상시 소통 창구로 운영됐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기능이 사실상 중단됐다.
북한은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남북 간 통신선을 차단한 뒤 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당시 폭파 장면을 공개하며 건물이 완전히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통일부는 연락사무소 폭파로 발생한 국유재산 손해액을 연락사무소 청사 약 102억5천만원, 인접한 종합지원센터 약 344억5천만원 등 모두 447억원가량으로 산정했다. 정부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중단하고 국가채권을 보전하기 위해 2023년 6월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는 원고가 대한민국, 피고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기재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 당국을 피고로 지정해 국내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첫 사례다.
북한은 소송에 대응하지 않았고 변호인도 선임하지 않았다. 법원은 북한에 소송 관련 서류를 직접 전달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법원 게시판 등에 서류를 게시하면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공시송달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심리 과정에서 정부가 제출한 시설 건립비와 개보수 비용, 감가상각 자료 등을 검토했다. 연락사무소와 종합지원센터의 평가액이 실제 손해액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도 판단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 판결로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 행위에 대한 민사상 배상 책임은 1심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다만 북한이 국내 법원 판결을 인정하거나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지급할 가능성이 낮아 실제 배상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정부가 판결을 근거로 북한 명의의 국내 재산이나 제3자가 관리하는 자산을 찾아 강제집행에 나설 수 있는지도 쟁점이다. 북한 자산의 소유관계를 확인하는 과정뿐 아니라 국가면제 원칙과 남북관계의 특수성 등을 둘러싼 법적 검토도 필요하다.
정부는 판결문을 분석한 뒤 항소 여부와 국가채권 확보 방안, 강제집행 가능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1심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배상금을 실질적으로 회수할 수단을 마련할 수 있는지가 이번 소송의 남은 핵심 과제다.
백설화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