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기록적인 폭우로 14명의 사망자와 1명의 실종자가 발생하는 등 깊은 상처를 입은 경남 산청에 또다시 밤샘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2200여 명의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는 등 공포의 밤을 보냈다. 어젯밤(3일)부터 지리산 일대에 200mm가 넘는 폭우가 집중되자, 산청군은 전날 저녁 8시를 기해 전 읍면에 산사태 경보와 함께 주민 대피령을 발령했다.
이번 대피령으로 현재까지 1647세대, 2262명의 주민들이 마을회관과 인근 학교 등 안전한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특히 지난 3월 대형 산불 피해를 본 삼장면과 단성면에는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한 대피령이 내려지는 등 당국은 선제적 조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미 지난달 산사태로 집을 잃고 2주 넘게 대피소 생활을 하던 300여 명의 이재민들은 또다시 쏟아지는 비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번 폭우는 지난달 참사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경상남도는 즉시 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 2단계를 발령하고 산사태 우려 지역과 저지대 주민 5600여 명에게 대피를 안내했다. 도내 하천과 도로 등 260여 곳이 통제됐으며, 산림청 역시 산청과 함양에 산사태 경보를, 인근 거창, 합천, 하동 등에는 산사태 주의보를 발령하며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다행히 밤사이 쏟아지던 빗줄기는 4일 아침부터 점차 잦아들면서, 산청을 포함한 경남 10개 시군에 내려졌던 호우특보는 대부분 해제되거나 완화됐다. 하지만 아직 일부 경상도 지역에는 호우특보가 남아있고, 오늘 오전까지 시간당 30mm 이상의 강한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지난 재해의 복구 작업과 마지막 실종자 수색 작업이 이번 비로 인해 또다시 차질을 빚게 되면서 주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반복된 물난리에 주민들은 "더 잃을 것도 없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덮쳐온 재난에 산청 지역 사회는 깊은 트라우마에 신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