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순직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특검 소환에 응해 언론 앞에서 장문의 입장문을 발표하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정작 조사실에서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이중적 태도로 일관해 수사를 조롱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순직 장병의 유족은 "참담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며 울분을 토했고,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도 질타가 쏟아졌다.
임 전 사단장은 지난 7일 '순직 해병 특검법'에 따라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출석하며 취재진 앞에서 약 2400자에 달하는 입장문을 직접 낭독했다. 그는 "채 상병의 죽음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법적으로는 책임질 부분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수중 수색을 지시한 적이 없고 예하 부대에 대한 지휘 권한도 없었다며 자신의 핵심 혐의인 업무상 과실치사와 직권남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마치 자신의 결백을 적극적으로 소명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조사실에 들어가자마자 180도 돌변했다. 특검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차 소환 때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질문에 진술을 거부했다. 그는 "특검이 밑도 끝도 없이 묻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으며, 변호인의 조력을 이유로 오후 5시까지만 조사를 받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다며 예고 없이 특검 사무실을 찾아왔던 과거의 행보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습이다.
정민영 특검보는 "밖에서는 길게 입장을 얘기했지만, 조사에서는 상당수 질문에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임 전 사단장의 행위가 자신의 방어권 행사를 넘어, 특검 수사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려는 의도가 깔린 '사법 방해' 행위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채 상병의 어머니는 입장문을 통해 "카메라 앞에서만 당당하고 조사실에서는 비겁하게 입을 닫는 모습에 부모로서 참담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며 "진정 떳떳하다면 특검 수사에 성실히 임해 진실을 밝히라"고 호소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도 "국민과 유족을 우롱하는 행태"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검팀은 임 전 사단장의 진술 거부에도 불구하고 다음 주 추가 소환 조사를 통해 혐의를 입증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모두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여론을 향해서는 결백을 외치고, 수사기관에서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임 전 사단장의 모순된 전략이 과연 법정에서 통할 수 있을지, 그의 행보 하나하나에 국민적 공분이 쌓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