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인천 계양구의 한 하수관로 현장에서 노동자 두 명이 맨홀 안에 들어갔다가 질식해 숨졌다. 그중 한 명인 48살 이용호 씨는 의식을 잃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었다가 함께 희생됐다.
이 씨는 대구에서 필리핀 국적의 아내와 3녀 2남, 다섯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첫째는 11살, 막내는 이제 생후 6개월에 불과하다. 가족들에게 이 씨는 언제나 ‘슈퍼맨 아빠’였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는 하루 종일 땅속에서 하수관을 점검하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빠짐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을 여행했다. 가족사진 속에는 캠핑장에서 아이들을 품에 안은 모습, 불멍을 하며 맥주잔을 기울이던 모습이 남아 있다. 아이들은 여전히 주말이 되면 “아빠랑 캠핑 가자”고 말하며 그날들을 기억한다.
사고는 주말 일요일 오후에 일어났다. 이 씨는 출장 중이었지만, 전날 밤 아내에게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 일 마치고 얼른 올라가겠다”고 전화했다. 대구에 살던 그는 조금이라도 일당이 더 나은 현장을 찾아 인천까지 올라와 일하고 있었다. 그 출장이, 마지막이 됐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안전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맨홀 내부의 유해가스 농도를 확인하지 않은 채 작업이 진행됐고, 구조장비도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먼저 맨홀에 들어갔다가 쓰러진 동료를 보고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그러나 환기되지 않은 좁은 공간에서 치명적인 유해가스가 순식간에 퍼져 두 사람 모두 의식을 잃었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땐 이미 늦은 상태였다.
유가족은 “아빠는 끝까지 누군가를 살리려다 갔다”며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번 사고를 두고 “안전관리 의무를 소홀히 한 인재”라고 지적했다. 맨홀과 하수관로 등 밀폐공간 작업은 유독가스 누출 위험이 높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안전 교육과 측정 장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이후 현장 안전 실태 점검을 벌이고, 관련 업체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다. 하지만 노동단체들은 “사후 점검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하청 중심의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용호 씨의 가족은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그의 빈자리를 지키고 있다. 집 안 곳곳에는 아빠의 사진과 함께 아이들이 그린 ‘슈퍼맨 그림’이 붙어 있다.
그의 막내아이는 아직 말을 배우는 중이지만, 사진 속 아빠를 가리키며 “아빠”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