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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택가에 ‘무단 태극기 게양’…주민 불안과 갈등 확산

박현정 기자 | 입력 25-10-14 10:22



국경일도 아닌 날, 서울의 한 주택가 골목마다 태극기가 줄지어 걸렸다. 문제는 이 태극기들이 집주인의 동의 없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무단으로’ 설치된 것이었다. 일부 주민들은 “애국심을 내세운 사적 행동이 사생활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며 불안을 호소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사는 박문삼 씨(64)는 아침마다 대문 앞에서 깜짝 놀란다. 하루 전 떼어놓은 태극기가 다시 걸려 있기 때문이다. “펄럭이는 그림자가 보여 나가봤더니 또 걸려 있었어요. 하루도 안 가 다시 달아놓습니다.” 박씨는 불쾌감과 함께 ‘누가, 왜 이런 일을 반복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직접 현장을 찾아가 보니 골목 대부분의 가정집과 상가, 심지어 전봇대까지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국경일이 아님에도 깃발이 일제히 걸린 풍경은 이례적이었다. 설치 흔적을 살펴보니 본드 자국이 덕지덕지 묻은 비공식 깃대 꽂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목격자들은 “트럭이나 SUV 차량을 탄 중년 남성이 태극기를 싣고 다니며 교체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봤다”고 증언했다. 잠복 끝에 포착된 한 남성은 트렁크에 태극기를 가득 싣고 집집마다 깃발을 교체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애국심에서 하는 봉사활동”이라며 “좋다고 한 집에만 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장 주변 상인들의 말은 달랐다. “태극기를 빼면 안 된다며 ‘놔두라’고 협박하듯 말하고 갔다”는 증언도 나왔다.

조사 결과, 이 남성은 보수 성향의 한 민간 단체 소속 회원이었다. 이 단체는 지난 10여 년간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3천여 개의 태극기를 ‘자발적 게양 운동’ 명목으로 설치해왔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동의 없이 설치된 태극기가 불쾌감을 주거나 정치적 의미로 오해받을까 걱정된다고 말한다.

성산동 인근 상인 김모 씨는 “태극기를 그대로 두자니 특정 정치 성향으로 보일까 걱정이고, 뗐다가는 또 누군가 붙일까 불안하다”며 “국기가 이렇게 편 가르기 상징처럼 돼버린 게 안타깝다”고 했다.

단체 측은 자신들의 행위를 “헌법 수호 활동”이라 주장하지만, 태극기 게양을 거부하거나 문제를 제기한 주민을 ‘좌파’로 지칭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헌법을 준수하는 사람이 우파다. 국기를 거부하는 건 좌파”라는 식의 인식이 현장에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행위를 ‘사적 공간 침해이자 국기 훼손에 준하는 부적절한 행위’로 본다. 김용철 한국공공정책연구원장은 “국기에 대한 존중은 자발성과 공공성이 바탕이 돼야 한다”며 “특정 정치적 의사나 단체의 주장 수단으로 이용될 경우, 오히려 국기의 상징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국민 전체의 자산이다. 애국의 마음에서 시작된 행동이라도 남의 집 대문을 무단으로 건드리거나 정치적 구호로 변질되는 순간, 그 의미는 퇴색한다. 진정한 국기 사랑은 ‘누구의 집 앞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 속에 세워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가 끝까지 지키려 했던 것은 생명이었고, 그가 남긴 것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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