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의료 현장의 판도가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흉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환자의 모호한 심전도 결과 앞에서 AI가 100% 위험 신호를 감지해 생명을 구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의료 AI는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진료의 필수 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최근의 기술 혁신은 기업 중심에서 벗어나 임상 현장의 경험을 보유한 의사들이 직접 개발을 주도하며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가장 주목받는 사례는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김중희 교수와 순환기내과 조영진 교수팀이 개발한 심전도 분석 앱 "ECG 버디"다. 이 시스템은 기존의 고정식 기계 판독이 놓치기 쉬운 미세한 파형 변화를 실시간으로 포착한다. 실제로 최근 급성심근경색 직전 단계에 놓였던 60대 남성 환자의 경우, 일반 기계 판독이 경계성 판정을 내린 것과 달리 AI는 핵심 지표에서 위험도를 최고치로 경고하며 즉각적인 시술을 이끌어냈다. 스마트폰 촬영만으로 1분 내에 11가지 심장 리듬과 10가지 바이오마커를 분석하는 이 기술은 고가의 장비나 전산망 연동 없이도 활용 가능해 전국 80여 개 병원과 구급차 현장에서 매달 20만 건 이상의 분석을 수행하고 있다.
실제 임상 데이터는 AI 도입의 성과를 명확히 입증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의 통계에 따르면 시스템 적용 이후 환자 내원부터 혈관 확장 시술까지 소요되는 시간인 "도어 투 벌룬(Door-to-Balloon)" 타임이 평균 90분에서 82분으로 약 8분 단축됐다. 이는 분초를 다투는 응급 환자에게 생존율을 높이는 결정적인 수치다. 김중희 교수는 응급실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의사가 보다 확신을 갖고 신속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안전장치로서 AI의 역할을 강조했다.
의료 AI의 정밀함은 병리 진단 분야에서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병리과 정찬권 교수팀이 운용하는 디지털 병리 시스템은 암세포의 증식 지표를 전수 조사하여 정확한 수치로 제시한다. 과거 전문의의 육안과 경험에 의존해 추정치로 판독하던 영역을 AI가 수만 개의 세포를 하나하나 분석해 양성과 음성을 구분해내는 방식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는 림프절 전이 여부와 같은 미세한 판독 사각지대를 제거하여 환자 맞춤형 정밀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
행정 및 운영 효율화 측면에서의 진화도 거세다. 한림대성심병원이 개발한 생성형 AI 플랫폼 "HAI"는 방대한 양의 진료 기록과 간호 일지를 단 5초 만에 요약해 의료진에게 전달한다. 이는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데 드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며, 기록지 작성 업무의 약 90%를 AI가 선행 처리함으로써 의료진이 실제 환자 케어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환자의 낙상 확률을 실시간으로 예측해 고위험군을 선별 관리하는 시스템 역시 간호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사고 예방에 기여하고 있다.
현장 전문가들은 현직 의사들이 개발 전면에 나선 것이 이러한 성공의 핵심 비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의료진의 업무 흐름과 현장의 고충을 완벽히 이해한 상태에서 설계된 AI는 임상 현장에 즉각 투입되어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미경과 청진기를 대신해 AI 모니터가 병원실의 상징이 되고 있는 현재, 의료 AI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환자의 안전과 의료 서비스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인프라로 안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