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휴전 합의 이후에도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정상화가 지연되는 가운데, 국제 해운업계가 이란의 통행료 징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섰다. 유조선 선사들은 이란 측에 비용을 지불하는 행위가 국제법 및 대테러 규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영국 BBC 방송은 10일(현지시간) 국제유조선선주협회(INTERTANKO)가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과 명목의 어떠한 비용도 이란에 지불하지 말라고 강력히 권고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정부는 최근 해당 해협을 지나는 선박당 최대 200만 달러(약 28억 5,000만 원)에 달하는 통행료를 징수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협회 측이 강경한 입장을 내놓은 배경에는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지위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협회 이사는 "이란 혁명수비대는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의해 테러 단체로 지정된 조직"이라며 "이들에게 자금을 지불하는 것은 테러 지원 행위로 간주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사들이 통행료를 낼 경우 오히려 국제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국제기구 역시 이란의 조치가 국제 해상법 위반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아르세니오 도밍게스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은 "천연 수로인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법에 따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통로여야 한다"며 "특정 국가가 임의로 통행료를 부과하거나 제한을 두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해운업계에서는 이란의 이번 요구가 휴전 합의 이후 경제적 이득을 챙기기 위한 압박 수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전략 요충지를 볼모로 삼아 서방 국가들과의 협상력을 높이려 한다는 것이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최근 해협 인근에서 경비 활동을 강화하며 선박들의 움직임을 밀착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선사들의 거부가 이어질 경우 이란 측의 선박 나포나 위협 등 물리적 충돌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주요 해운국들은 호르무즈 해협 내 안전 항로 확보를 위해 군함 파견이나 공동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란의 통행료 강행 여부와 이에 따른 국제 해운 운임의 변동 가능성이 향후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