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출석 요구에 응해 정해진 시간에 스스로 나타난 피의자를 체포영장이 있다는 이유로 연행한 행위는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법한 집행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과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양형에 대해서는 원심의 판단을 유지했으나, 수사기관이 체포영장을 집행한 과정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적 잣대를 적용해 위법성을 명확히 규정했다. 영장이 적법하게 발부된 상태라 하더라도 집행 시점의 상황을 고려할 때 피의자가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는 상태였다면 강제력을 동원한 체포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취지다.
사건의 발단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북부경찰청은 2020년부터 약 5개월간 오피스텔을 빌려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A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이후 경찰은 A씨에게 수차례 출석을 요구했고, A씨는 변호인 상담 등을 이유로 일정을 조율하다 2월 19일 오후 경찰청에 자진 출석하기로 약속했다.
사건 당일 오후 A씨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 경기북부경찰청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대기 중이던 경찰관 3명은 A씨가 청사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미리 발부받아 둔 체포영장을 제시하며 현장에서 그를 체포했다. A씨가 수사기관의 요구에 응해 스스로 찾아온 상황이었음에도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해 신체의 자유를 구속한 것이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법원에서 발부된 영장이 존재했고 집행 절차에 결격 사유가 없다고 판단해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체포 과정에서 확보된 진술과 증거들의 효력도 모두 인정되어 A씨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체포영장의 효력과 별개로 실제 이를 집행해야 할 필요성이 현장에서 증명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영장을 집행할 때 영장에 의한 체포 사유와 필요성이 충족되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적시했다. A씨가 동종 전력이 있고 범행 방식이 은밀했다는 점에서 영장 발부 자체는 정당했으나, 집행 당시 A씨가 자진 출석 중이었고 도주나 증거 인멸의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 근거가 됐다.
실제로 당시 경찰이 작성한 수사 보고서에도 A씨를 반드시 체포해야만 했던 구체적인 이유나 증거 인멸 우려에 대한 소명은 담기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은 이러한 행위가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피의자의 권리를 침해한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고 판시했다.
다만 이번 판결이 A씨의 무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법원은 체포 과정이 위법해 해당 시점에 작성된 일부 조서의 증거 능력이 부정되더라도, 이미 확보된 다른 객관적 증거만으로도 유죄를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위법한 체포가 판결 결과 자체를 뒤집을 만큼 피고인의 방어권을 본질적으로 훼손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수사 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체포영장 집행 방식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영장이 발부된 피의자라 할지라도 수사에 협조하며 자진 출석하는 경우까지 강제로 연행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대법원이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향후 일선 수사기관의 영장 집행 가이드라인과 피의자 신병 확보 절차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과 변화는 피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