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일 820조 9천억 원 규모의 2027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간다.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된 예산안을 놓고 여당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민생 지원을 위한 재정 투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대규모 기금 조성과 재정지출 확대를 문제 삼으며 강도 높은 삭감을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한다. 이 대통령은 정부의 재정 운용 방향과 주요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여야에 예산안 처리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은 총지출 820조 9천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반도체 산업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를 바탕으로 미래 산업 투자와 사회안전망 확충에 재정을 투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번 예산 심사에서 가장 큰 쟁점은 정부가 추진하는 162조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이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반도체 호황 등에 힘입어 늘어난 세수를 기금으로 조성해 미래 산업에 투자하고, 향후 세입 여건이 악화될 경우에도 필요한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규모 기금을 별도로 조성하는 방식이 국회의 예산 통제 기능을 약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채무와 이자 부담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추가 재원을 기금에 적립하기보다 기존 채무를 줄이는 데 우선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야의 입장 차이는 예산 심사에 앞서 진행된 공개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0월 30일 "국민을 지키는 예산을 빈틈없이 챙기고, 국정감사에서 확인한 민생 과제 입법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같은 날 정부의 재정 운용 구상을 비판하며 "국회의 통제를 벗어나 마음대로 돈을 뿌리겠다는, 그야말로 '200조 포퓰리즘' 자유 이용권"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정부 예산안에서 130조 원이 넘는 규모의 삭감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삭감 대상과 규모를 놓고 여당과의 충돌이 예상되는 가운데, 실제 조정 결과는 국회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미래대응기금의 사용 범위도 논쟁거리다. 국민의힘은 아동수당과 청년적금 등 복지사업이 기금에 포함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미래 산업 투자와 경기 변동에 대비한다는 기금의 조성 목적에 비춰 기존 복지성 지출까지 포괄하는 것이 적절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예산안 공청회에서는 반도체 산업 호황으로 늘어난 재정 여력을 취약계층 지원과 복지 확대에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경제 성장의 성과를 국민 생활 안정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취지다.
기금의 재원 조달 방식과 지출 대상, 국회의 심사·감독 범위가 예산 심사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이유다.
국가채무에 따른 이자 부담도 여야 공방의 중심에 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정부의 미래대응기금 추진을 비판하며 "하루 1천1백억 원이 넘는 이자를 내면서 누구의 미래를 말하는 것입니까"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재정 여력이 확보됐을 때 국가채무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경기 대응과 미래 산업 육성, 민생 지원을 위한 재정 투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가채무 상환과 미래 투자 사이의 재원 배분을 어떻게 결정할지가 이번 심사의 핵심 과제로 제기됐다.
대통령비서실과 중대범죄수사청의 특수활동비도 삭감 논의 대상에 올랐다.
국민의힘은 해당 기관의 특수활동비 예산에 대한 삭감을 추진하고 있다. 특수활동비는 업무 특성상 지출 내역의 공개에 제한이 있는 경비인 만큼 편성 필요성과 집행 통제, 사후 검증 방식 등이 심사 과정에서 다뤄질 수 있다.
예산안 심사와 별도로 국회에서는 사법부 관련 현안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이번 주 국회 본회의에 보고할 예정이다. 예산안 심사와 국정조사 문제는 별개의 국회 절차지만, 두 사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같은 시기에 진행되는 상황이다.
정부 예산안은 국회 심사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헌법상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하며, 2027년도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은 올해 12월 2일이다.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의 사업별 필요성과 재정 부담을 검토하고 증액 또는 감액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다만 국회가 정부 동의 없이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늘리거나 새로운 비목을 설치할 수는 없다.
이번 심사에서는 820조 원대 총지출 규모뿐 아니라 162조 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의 운용 구조와 복지사업 편입 여부, 국가채무 관리 방안 등이 함께 검토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협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미래 투자와 재정건전성 사이에서 어떤 지출을 우선할 것인지가 국회 심사의 핵심 쟁점으로 남았다.
백설화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