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수익 구조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해외에서 달러로 매출을 올리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기업과 수출 중심 기업은 원화 환산 매출 감소에 직면한 반면, 원료의약품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제약사들은 수입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6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최근 원·달러 환율이 연중 고점보다 크게 낮아지면서 기업별 외화 매출과 수입 원가, 해외 임상시험 비용 등이 실적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월 1,550원대까지 상승한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10월 23일에는 1,323원대까지 내려갔으며, 11월 들어 1,340원대로 일부 반등했다. 5일 보도된 외환시장 자료에 따르면 4일 종가는 1,341.5원이었다.
환율 하락은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는 뜻이다. 같은 금액의 달러를 벌어들이더라도 원화로 환산한 매출은 줄어들고, 반대로 달러로 결제하는 수입 비용은 낮아진다.
이 같은 변화에 민감한 기업으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꼽힌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계약을 수주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해외 고객사와의 거래에서 달러 매출이 발생하는 만큼 원화 강세는 매출 환산액과 수익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1,000만 달러의 매출이 발생했을 때 환율이 1,500원이면 원화 환산액은 150억 원이다. 환율이 1,300원으로 내려가면 같은 매출도 130억 원으로 줄어든다.
실제 판매량이나 수주 규모가 변하지 않았더라도 원화 기준 매출에는 20억 원의 차이가 발생하는 셈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국내 생산시설에서 인건비와 설비 운영비 등을 지출한다. 원화로 발생하는 비용의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달러 매출의 환산액이 줄어들면 수익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실제 손익은 달러로 결제하는 원부자재 구매액과 외화 부채, 환율 위험을 줄이기 위한 계약 등에 따라 달라진다. 환율 하락이 곧바로 같은 비율의 영업이익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셀트리온 역시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바이오시밀러 판매를 확대하고 있어 환율 변동이 원화 기준 매출과 이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바이오시밀러는 특허가 만료된 바이오의약품과 품질, 안전성, 유효성 측면에서 동등성이 입증된 의약품이다. 해외 판매가 늘수록 달러와 유로 등 외화 거래 규모도 커지는 구조다.
셀트리온은 해외 판매법인 운영과 현지 마케팅, 유통비용 등에서도 외화를 사용한다. 따라서 환율 변동이 연결 실적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려면 매출뿐 아니라 현지 비용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최근 공개된 기업별 환율 민감도 분석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드러났다.
10월 28일 조선비즈가 보도한 기업별 분석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할 경우 세전 손익이 약 625억 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셀트리온은 환율이 8% 하락할 때 세전 이익이 약 686억 원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일정한 환율 변동을 가정한 민감도 분석으로, 실제 확정된 손실액이나 연간 실적 전망치는 아니다. 기업의 외화 자산과 부채, 거래 구조가 바뀌면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
신약 기술을 해외 제약사에 이전하는 바이오기업도 환율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국내 바이오기업은 해외 제약사와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금과 개발 단계별 기술료, 제품 판매에 따른 로열티 등을 달러로 받는 경우가 있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 동일한 달러 기준 기술료를 수령하더라도 원화 환산액은 감소한다.
바이오의약품 제형 변경 기술을 개발하는 알테오젠 역시 환율 변동에 영향을 받는 기업 가운데 하나다. 앞서 공개된 분석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할 경우 세전 이익이 약 263억 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원료의약품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국내 제약사들은 원화 강세에 따른 원가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제약산업은 중국과 인도, 유럽 등 해외에서 원료의약품을 들여오는 비중이 높다. 수입 계약이 달러로 체결된 경우 환율이 낮아지면 동일한 물량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원화가 줄어든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를 인용한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25년 국내 원료의약품 수입액은 21억8,360만 달러로 집계됐다. 원료의약품의 해외 조달 규모가 큰 만큼 환율 변동은 국내 의약품 제조원가에도 영향을 준다.
동아제약과 한독, 부광약품 등 수입 원료와 해외 도입 의약품을 활용하는 기업들은 원화 강세에 따른 비용 절감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동아제약의 경우 환율이 10% 하락하면 세전 이익이 약 1억1,000만 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다만 기업마다 수입 규모와 재고 수준, 외화 채무 구조가 달라 원가 절감 효과에도 차이가 있다.
특히 원료의약품은 구매 시점과 실제 제품 생산·판매 시점 사이에 시차가 발생한다. 이미 높은 환율에 확보한 원료 재고가 남아 있다면 환율 하락 효과가 곧바로 손익에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국내 의약품 가격 구조도 변수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약품은 정부의 약가 제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원료 가격이나 환율이 변했다고 해서 판매가격을 자유롭게 조정하기 어렵다.
해외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신약 개발기업에도 원화 강세는 비용 절감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진행되는 임상시험은 현지 의료기관과 임상시험수탁기관에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달러로 계약한 임상시험 비용은 원·달러 환율이 낮아지면 원화 기준 부담이 줄어든다.
반대로 환율이 다시 상승하면 해외 임상시험과 기술 도입, 연구장비 구매 등에 필요한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환헤지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방식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곧바로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해외 원료 구매나 현지 사업 운영에 사용하는 것이다. 달러 매출과 달러 비용을 서로 대응시키면 환율 변동에 따른 영향을 일부 줄일 수 있다.
선물환 계약 등을 통해 미래의 환율을 일정 수준으로 고정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환헤지에는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환율이 예상과 반대로 움직이면 유리한 환율을 활용할 기회가 제한될 수도 있다.
이번 환율 변화는 제약·바이오 산업을 수출기업과 내수기업으로 단순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보여준다.
같은 바이오기업이라도 해외 생산시설과 판매법인을 보유한 기업,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기업, 해외 기술료를 받는 기업은 환율에 노출되는 방식이 다르다.
수입 원료를 사용하는 제약사 역시 해외 매출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면 환율 하락에 따른 원가 절감 효과와 매출 환산 감소 효과가 함께 발생한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에서 움직이는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실적을 판단할 때는 환율 자체보다 외화 매출과 비용의 차이, 환헤지 규모, 원료 재고 및 해외 사업 구조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특히 환율 하락이 실제 영업이익 개선이나 감소로 얼마나 이어지는지는 향후 기업별 분기 실적과 외화 위험 공시를 통해 확인해야 할 문제다.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