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년 넘게 유지해 온 다세대·다가구주택의 건축 면적과 층수 제한을 완화한다. 오는 12일부터 건축 면적 기준이 기존 660㎡에서 1,000㎡로 확대되고, 다가구주택은 기존 3층에서 4층까지 지을 수 있게 된다. 도심의 중소규모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한 조치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건축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은 정부가 지난 8월 13일 발표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의 후속 조치로, 1990년대 이후 유지돼 온 다세대·다가구주택 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개정안에 따르면 다세대·다가구주택 한 동에서 주택 용도로 사용하는 바닥면적의 합계 기준은 기존 660㎡ 이하에서 1,000㎡ 미만으로 확대된다. 종전 기준보다 상한이 약 51.5% 늘어나는 것이다.
다가구주택의 층수 제한도 주택으로 사용하는 층을 기준으로 3개 층 이하에서 4개 층 이하로 완화된다. 이에 따라 대지 여건과 다른 건축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기존보다 한 층을 더 주거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면적 제한이 완화된다고 해서 모든 다세대·다가구주택을 1,000㎡ 규모로 건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건폐율과 용적률, 주차장 설치기준, 대지 조건 등 다른 법적 요건은 별도로 충족해야 한다.
정부가 이번 규제 완화에 나선 배경에는 도심 비아파트 공급의 구조적 제약이 있다.
그동안 다세대·다가구주택은 해당 지역에서 허용하는 용적률에 여유가 있어도 주택 용도 면적과 층수 제한 때문에 대지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넓은 대지를 확보한 건축주도 법정 면적 상한에 막혀 건물 규모를 늘리는 데 제약을 받았다.
이번 개정으로 기존 건축기준을 충족하면서도 면적 제한 때문에 추가 개발이 어려웠던 부지에서 증축이나 재건축을 검토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은 모두 여러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이지만 소유권 구조에는 차이가 있다.
다세대주택은 공동주택으로 분류되며 개별 세대별 구분소유가 가능하다. 반면 다가구주택은 단독주택의 한 유형으로, 일반적으로 건물 전체가 하나의 소유권 단위로 취급된다.
이러한 차이는 분양과 임대사업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세대주택은 개별 세대 단위의 거래가 가능하지만 다가구주택은 건물 전체의 소유권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정부는 이번 개정을 통해 기존 원룸과 투룸 중심의 주택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평면 구성을 적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민공동시설 설치에 대한 규제도 완화된다.
개정안은 다세대주택에 주민공동시설을 설치하는 경우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쳐 용적률을 완화할 수 있도록 했다. 공동주택에 비해 주민 편의시설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소규모 주택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이에 따라 건축주는 건물 규모와 대지 조건에 맞춰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계획하고, 관련 심의를 통해 용적률 완화 적용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주민공동시설을 설치한다는 이유만으로 용적률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완화 여부와 범위는 관련 법령과 건축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건축물의 일조권 확보를 위한 높이 제한도 함께 조정된다.
기존에는 주거지역에서 정북방향 일조권을 확보하기 위해 건물 높이가 10m를 넘는 경우 상층부를 사선 형태로 설계해야 하는 사례가 많았다.
개정된 건축법령에서는 높이 10m 초과부터 17m 이하 구간에 5m의 고정 이격 기준을 적용한다. 이에 따라 일정한 대지 조건에서는 건물 상층부를 과도하게 줄이지 않고 설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건물 내부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인접 대지와의 거리, 용도지역, 건축물의 높이 등 개별 조건에 따라 실제 적용 결과는 달라진다.
이번 규제 완화는 비아파트 공급이 위축된 상황에서 추진됐다.
국토교통부의 9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비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전년 동월 대비 35.3% 감소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누적 인허가 물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줄었다.
비아파트 시장은 전세사기 여파와 임대차시장 불안, 건축비 상승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공급과 거래가 위축된 상태다.
특히 다세대·다가구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사업 규모가 작고 민간 건축주의 자금 조달 여건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건축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사업비와 금융비용, 임대수요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제 착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정부는 건축 규제를 완화해 도심 내 대지 활용도를 높이고 민간의 주택 공급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진철 국토교통부 건축정책관은 다세대·다가구주택이 과거 도시팽창기에 신속한 주택 공급을 위해 도입됐지만 경직된 건축기준으로 변화한 개발 여건과 주거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개정이 도심의 대지 활용도를 높이고 일반주택 공급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개정된 건축법 시행령은 오는 11월 12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 조치로 다세대·다가구주택 건축에 적용되는 면적과 층수 제한은 완화되지만, 실제 공급 물량이 얼마나 늘어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역별 용적률과 주차장 확보 기준, 공사비, 금융 여건 등에 따라 건축 가능한 규모와 사업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주택의 증축이나 재건축을 추진하려는 건축주는 건축물의 구조 안전성과 현행 건축기준 충족 여부를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30년 넘게 유지된 건축 규제가 완화되면서 도심 비아파트 공급 확대를 위한 제도적 여건은 마련됐다. 그러나 전세사기 이후 위축된 비아파트 수요와 높은 건축비 부담 속에서 이번 조치가 실제 착공과 입주 물량 증가로 얼마나 이어질지가 남은 과제다.
주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