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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롯데시네마 합병, 한국 영화산업 30년 지배한 멀티플렉스 시대의 종언 예고

박현정 기자 | 입력 25-07-0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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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한국 영화산업 2, 3위 사업자인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가 합병을 선언했다. 최근 영화산업의 전반적인 부진 속에서 이루어진 이번 합병은 단순히 두 영화관 체인의 통합을 넘어, 지난 30년간 한국 영화산업을 지배해 온 대기업 주도의 수직계열화 모델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CJ, 동양그룹(현 오리온그룹), 롯데 등 식품·소비재 산업에서 성장한 대기업들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라는 혁신적인 상품을 들고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1998년 CJ의 CGV강변11 개관을 시작으로 멀티플렉스는 단순한 영화 상영 공간을 넘어 쇼핑, 외식, 여가를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CJ가 영화 사업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되었으며, 이들 대기업은 극장 상영뿐만 아니라 투자와 배급 부문까지 영역을 넓히며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이뤄냈다.

롯데는 1999년 롯데백화점 일산점에 롯데시네마를 열며 진입했고, 2003년 롯데쇼핑 시네마사업본부에서 영화 투자를 시작해 2005년 롯데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며 투자·배급까지 확장했다. 2001년 오리온그룹으로 바뀐 동양그룹은 1999년 미디어플렉스, 2002년 쇼박스를 설립하며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이처럼 대기업들은 단기간에 영화산업의 전반을 수직적으로 통합하며 한국 영화산업을 산업화 궤도에 올려놓았다. 배급과 상영을 함께 담당하며 시장 규모를 키워 '천만 영화' 시대를 열었고, 한국 영화는 대중적 성공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대기업 주도의 수직계열화는 한국 영화산업의 성장을 촉진했지만, 동시에 부작용도 낳았다.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산업 내 힘의 구도를 변화시켰다. 배급사의 힘이 커지면서 광역 개봉과 개봉 첫 주의 성과가 영화의 흥망을 결정짓게 되었고, 마케팅 비용이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대기업 계열 배급사는 자신들이 투자한 영화를 자사 극장에 우선 배정하며 중소 제작·배급사들은 경쟁에서 불리해졌다. 짧고 강한 '광역 개봉' 방식은 영화 한 편에 투입되는 마케팅 자원과 실패 리스크를 키워 제작 영화 사이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초고속 인터넷 확산으로 비디오 시장이 위축되면서 부가판권 수익이 줄어들었고, 극장 흥행 의존도가 더욱 커졌다. '극장 점유율'이 영화의 수익 구조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면서 멀티플렉스를 보유한 대기업의 절대적 우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 관객이 급감하면서 이 견고한 체계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의 합병은 단순한 시장점유율 조정 차원을 넘어, 지난 30년간 멀티플렉스를 기반으로 구축된 한국 영화산업 구조가 새로운 재편을 예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수직계열화 구조는 분명 한국 영화산업 성장의 주축이었지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부상으로 콘텐츠 소비 경로가 다양화되면서 그 유효성이 약화되고 있다. 극장을 보유한 배급사의 스크린 점유율이 더 이상 흥행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30년 전 멀티플렉스는 혁신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영화 관람은 집에서 OTT를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평범한 소비 행위가 되었으며, 극장 방문이 더 이상 '가슴 설레는 경험'이나 특별한 문화적 행위가 아니게 된 것이다. 미국이 극장 수를 줄이거나 리모델링하며 '공간'의 의미를 지켜낸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극장이 과잉 공급된 상태에서 관람 경험의 밀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영화관이 양적 팽창에서 질적 전환으로의 이동을 고민할 시점이 됐다는 의미다.

결국 지금 필요한 질문은 "왜 우리는 굳이 극장에 가야 할까?"이다. OTT 서비스가 언제든, 어디서든, 원하는 영화를 고화질로 제공하는 시대에, 극장은 단순히 '스크린이 더 크다'는 이유만으로는 관객을 설득할 수 없다. 극장에 가는 이유는 기술적 우위보다는 그 공간이 주는 '경험의 밀도' 때문이었다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는 극장이 생존하기 위한 정체성의 전환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극장은 더 큰 화면, 더 선명한 음향, 더 좋은 좌석 등 기술적 우위를 강조해왔지만, 이제 이러한 장점들은 대형 TV나 홈시어터 등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 기술 평준화는 극장이 기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지금의 극장은 '기술'이 아니라 '맥락과 의미'를 주는 공간으로 진화해야 한다. 과거의 극장은 낯선 이들과 감정을 공유하며 함께 울고 웃는 집단 감정의 장이었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만 가능한 몰입감, 상영 이후의 대화와 해석 같은 것은 OTT가 결코 줄 수 없는 비일상의 감각이다. OTT와 스마트폰 관람이 일상화된 지금, 이처럼 집단적 감정 몰입의 장소로서 극장의 가치를 되살리는 것이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극장용 영화의 내용도 이러한 점들을 강화해야 더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새로운 시도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메가박스의 '더 부티크 프라이빗'은 두 명만을 위한 상영관으로 프라이버시와 집중도를 높인다. CGV의 '4DX'는 움직이는 좌석과 향기로 영화를 신체로 느끼게 한다. 일부 독립극장은 상영 후 감독·배우와의 대화를 통해 상호작용 공간을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관객이 극장을 단순한 상영 공간이 아니라 '영화를 함께 체험하는 장소'로 다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영화산업을 선도해온 두 대형 극장 체인이 손잡았다면, 그 합병은 단순한 구조조정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관객들은 지금, 극장이 다시금 특별한 경험의 플랫폼으로 거듭나기를, 진정한 혁신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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