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10일,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2.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지난해 8월 이후 8차례 연속 동결 기조를 이어가게 됐다. 이번 결정은 여전히 2% 목표치를 웃도는 물가 상승률과 불안한 환율 등 인플레이션 압력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내수 부진 등 경기 하방 리스크 사이에서 한은의 깊은 고심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시장의 예상에 부합하는 결정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통화정책 방향 전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금통위 위원 중 1명이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리 인하 소수의견이 등장한 것은 긴축 기조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시장은 이를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는 비둘기파적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한은이 다시 한번 '동결'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안심할 수 없는 물가 상황 때문이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 후반으로 둔화 흐름을 보이고는 있지만, 한은의 목표 수준인 2%에 안착했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여기에 최근 다시 1300원대 후반으로 상승한 원달러 환율은 수입 물가를 자극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다시 높일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남아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한은의 운신 폭을 제약하는 주요 외부 요인이다.
반면,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고금리 장기화로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한계에 다다랐고, 이는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PF 부실 문제는 금융 시스템 전반을 위협할 수 있는 뇌관으로 지목된다. 이 때문에 경기 침체와 금융 불안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제는 금리 인하를 통해 정책의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다. 이번에 등장한 소수의견은 이러한 내부의 고민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시장의 관심은 잠시 후 11시 20분부터 진행될 이창용 한은 총재의 기자간담회에 집중되고 있다. 이 총재가 이번 소수의견의 배경과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물가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기존의 원론적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경기 하방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이전보다 강하게 표명하며 향후 정책 전환의 여지를 열어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금리 동결 소식이 전해진 직후 금융시장은 소수의견 등장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서울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금리는 향후 금리 인하 기대를 선반영하며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반면 원달러 환율은 소폭 상승하며 통화정책 완화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국은행이 마침내 통화정책 전환의 '깜빡이'를 켰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첫 금리 인하의 시점을 저울질하는 시장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