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진국형 안전사고로 불리는 맨홀 질식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서울 금천구의 한 공사 현장에서 작업하던 70대 노동자 2명이 쓰러져 1명이 숨지고 1명은 위중한 상태다. 매년 여름철 반복되는 비극에, 기본적인 안전 수칙이 또다시 무시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방 당국과 경찰에 따르면 사고는 지난 27일 낮 12시 40분경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상수도 누수 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당시 맨홀 내부에서 작업을 하던 70대 남성 작업자 2명이 갑자기 쓰러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은 심정지 상태에 빠진 이들을 구조해 즉시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이 중 한 명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28일 새벽 사망 판정을 받았다. 다른 한 명 역시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는 등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이들이 맨홀 내부의 산소 부족으로 인해 질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합동 조사에 착수했다. 특히 고용노동부는 현장에서 밀폐 공간 작업의 3대 안전 수칙인 '작업 전 산소·유해가스 농도 측정', '작업 중 지속적인 환기', '구조 장비 및 보호구 비치' 등이 제대로 지켜졌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여름철은 기온 상승으로 미생물의 번식이 활발해져 맨홀 내부 유기물이 부패하면서 산소 농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황화수소 등 유독가스 농도는 높아져 질식 사고의 위험이 가장 큰 시기다. 이 때문에 관련 법규는 밀폐 공간 작업 시 반드시 사전에 공기 질을 측정하고, 작업 내내 환기팬 등을 통해 강제로 공기를 순환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고 역시 이러한 기본적인 안전 절차가 생략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현장의 상시 근로자 수가 5인 이상일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밀폐 공간 작업에 대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아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최근 10년간(2015~2024년) 맨홀 등 밀폐 공간에서 발생한 질식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120명이 훌쩍 넘는다. 대부분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경찰과 노동 당국의 조사가 마무리되면 이번 사고 역시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예고된 비극이었음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