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제주 성산일출봉에서 대형 암반이 굴러떨어지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사고 발생 이틀 전 이미 산림청이 해당 지역에 '산사태 주의보' 예측 정보를 통보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주도의 안전 불감증과 안이한 재난 대응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지난 15일 저녁 8시 43분쯤, 성산일출봉 등산로 인근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 확인 결과, 등산로 서쪽 진지동굴 부근의 접근금지 구역에서 지름 70~80cm 크기의 암반 2개와 나무 3그루가 3m 아래로 굴러떨어져 있었다.
이번 사고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이미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사흘 전인 지난 12일, 성산 지역에는 하루에만 210.3mm의 비가 쏟아졌다. 이는 역대 9월 일강수량 4위에 해당하는 기록적인 폭우였다. 이에 산림청은 13일 오전, 강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산사태 정보 시스템을 통해 서귀포시 성산읍 지역에 '산사태 예측 정보 주의보' 단계가 생성됐음을 제주도에 공식 통보했다. 지반이 약해져 붕괴 위험이 높다는 명확한 경고 신호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제주도는 이 경고를 사실상 묵살했다. 현행법상 산림청의 통보를 바탕으로 광역지자체가 위기 경보를 발령해야 하지만, 제주도는 자체 상황판단회의를 거쳐 별도의 경보를 발령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제주도 관계자는 "성산읍은 광범위한 지역이며, 성산일출봉은 산사태가 아닌 낙석이 가끔 발생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재난 가능성을 축소 해석하고, '산사태'와 '낙석'이라는 용어의 차이에 기대어 필요한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세계적인 명소이자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성산일출봉의 관리 주체가 잠재적 위험 신호를 인지하고도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현재 성산일출봉은 정상적으로 관람객 입장을 허용하고 있지만, 제주도 세계자연유산본부 등 관계기관은 추가 붕괴 위험성과 정확한 원인에 대한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기후 변화에 따른 재난 예측 시스템과 지자체의 현장 대응 매뉴얼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