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씨와 권성동 의원 측에 금품을 건네며 교단 현안을 청탁한 혐의의 정점으로 지목된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마침내 특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세 차례의 소환 요구에 불응하며 건강 문제를 사유로 들었던 한 총재는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하면서도, "참어머니인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신념을 반복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통일교의 조직적 정치 개입 의혹의 핵심 배경으로 지목된 '정교일치' 교리를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17일 오전, 한 총재는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김건희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을 미뤄왔다고 짧게 답했으나, 특검팀은 공범인 권성동 의원이 구속된 이후에야 일방적으로 출석 일자를 통보한 점을 지적하며 조사의 강제성을 시사했다. 특검은 한 총재의 출석이 수사 유불리를 따진 결과라고 보고 있다.
한 총재는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을 통해 권성동 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 1억 원을 전달하고,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해 김건희 씨에게 수천만 원 상당의 명품 목걸이와 가방을 제공하며 교단의 숙원 사업에 대한 협조를 구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은 이러한 로비 활동이 통일교의 '정교일치' 이념을 실현하려는 교단 차원의 조직적 움직임의 일환이라고 판단해왔다.
이날 약 9시간 반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한 총재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으며, 특히 정치와 종교의 결합을 추구하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금품 제공의 대가성을 부인하는 기존 입장과 달리, 교단 차원의 뚜렷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윤석열 정부 측에 접근했다는 특검의 시각에 힘을 싣는 대목이다.
특검은 한 총재가 관련자들과 말을 맞추는 등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크다고 보고, 이르면 18일 중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한, 로비 의혹의 또 다른 '윗선'으로 꼽히는 정원주 천무원 부원장에 대한 강제수사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어 통일교를 둘러싼 정계 로비 의혹 수사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