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한의사 간의 직역 경계 다툼이 엑스레이(X-ray) 사용 문제를 넘어 학술 교류 영역까지 확대되며 극단적인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최근 산하 단체들을 대상으로 한의사를 위한 연수 강좌 및 한의대 출강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한 사실이 26일 확인되었다. 이는 단순히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분쟁을 넘어, 한의사의 의과 영역 진출 주장에 대한 학문적 근거 제공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강경한 입장 표명으로 해석된다.
의협은 지난 19일, 대한의학회를 비롯한 26개 전문학회와 시도의사회 등 12개 산하단체에 "한의사 대상 연수강좌 및 한의대 출강 금지 협조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의 핵심은 의대 교수나 의사가 진행하는 강의가 "한의사도 의과 의료기기와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교육을 받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악용되고 있다는 인식이다. 의협은 이 같은 학문적 교류가 "한의계의 무분별한 의과 영역 침탈에 악용될 여지가 없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이미 일부 의사들이 단체 채팅방을 통해 강의를 나가는 의대 교수에 대한 "신고"나 "제명 조치"를 거론하는 등 강한 내부 갈등의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의협이 이처럼 학술 교류 단절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최근 재점화된 의료 기기 사용 논란이 있다. 가장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분야는 엑스레이 사용 문제다.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이 최근 국회에서 발의되자, 의협은 이를 국민 건강에 위해를 가하는 "악법"으로 규정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사안은 지난 1월 수원지방법원이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측정기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한의계의 사용권 확보 논의에 불을 지핀 바 있다.
엑스레이 논쟁에 이어 최근에는 레이저 및 국소마취제 사용을 둘러싼 충돌도 발생했다. 이달 초 서울 동대문경찰서가 국소마취제를 도포한 뒤 레이저 의료기기로 미용 시술을 한 한의사 A씨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린 것이 발단이다. 경찰은 A씨가 사용한 마취제가 처방 없이 구매 가능한 일반의약품이고, 레이저·초음파 등 기기는 한의학 교육과정에서도 사용된다는 이유를 들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결정에 대해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한특위)는 "의료체계의 근간을 정면으로 훼손한 중대한 판단 오류"라고 강력히 비판하며, 이를 "무면허 의료행위 및 한의사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로 규정했다. 반면,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이번 경찰의 결정이 "한의사의 국소마취제 및 피부·미용 의료기기 사용이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재확인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의협 관계자는 이번 결정으로 크림형 일반의약품과 피부·미용 의료기기 사용의 "실질적인 사용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이처럼 직역 간의 분쟁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의료법의 모호성을 지적한다. 의료법은 의료인의 업무 영역과 관련하여 의사의 업무를 '의과 의료와 보건지도', 한의사의 업무를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만 규정할 뿐, 실제 의료 행위의 내용에 대해서는 상세한 구분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실제로 동대문경찰서 역시 불송치 결정서에서 의료법상 한의사 업무에 관한 상세 규정 부재를 결정의 근거 중 하나로 삼았다.
남서울대 이주열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법원의 판결이나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곧 진료 프로세스의 적절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정부가 국민 피해가 없도록 적절성과 안전성에 대한 검증 과정을 거치게 해야 한다"는 원론적 해법을 제시했다. 직역 간의 영역 전쟁을 종식하고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담보하기 위해서는 입법부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의료인 업무영역에 대한 명확한 개념 규정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