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위한 정부안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가상자산 제도화를 둘러싼 정책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다. 디지털 자산 기본법의 핵심 쟁점인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두고 당국 간 주도권 싸움이 이어지자, 국회가 더 이상의 지연을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직접 입법 총대를 메고 나섰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가상자산 TF는 관련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단독 입법 처리까지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드러내며 입법 속도전에 돌입했다.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지난해부터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을 위한 논의를 지속해 왔으나,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와 운영 방식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최근 금융위가 기존 입장에서 일부 물러나 은행 중심의 컨소시엄에 발행권을 우선 부여하고, 이후 핀테크 등 기술 기업으로 범위를 넓히는 단계적 허용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실무적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금융위는 발행 주체 등 핵심 내용에 대해 정해진 바가 없다며 공식적인 확답을 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는 국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국회는 가상자산 시장의 혁신을 위해서는 은행 중심의 보수적인 발행 체계에서 벗어나 핀테크 기업이 주도하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국회는 이번 입법 과정에서 기존에 논의되지 않았던 가상자산 거래소의 지배구조 개편안까지 포함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정부안을 기다리지 않고 자체적인 법안 처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민주당 가상자산 TF는 오는 1월 셋째 주에 예정된 회의에서 디지털 자산 기본법을 당론으로 확정할 방침이다. TF 관계자는 금융당국과 통화당국 간의 엇박자로 인해 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상황이 가상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며, 시장의 안정성과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국회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정부를 배제한 채 입법권력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의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국회의 이 같은 행보에 가상자산 업계는 기대와 우려가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법안 통과를 통해 그간 시장을 짓눌러온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지만, 정부와 국회가 합의되지 않은 채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낼 경우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히 거래소 지배구조 개편 등 민감한 사안이 포함될 경우 업계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