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고착화된 건설 현장에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본격 상륙하면서 원청 건설사들이 노무 리스크 대응을 위한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하청 노동조합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사를 상대로 직접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공사 현장의 노사관계 판도가 근본적으로 뒤바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공포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6개월의 유예기간을 마치고 지난 1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법 시행과 동시에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은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등 주요 원청사 90여 곳에 교섭 응락 요구서를 전달하며 즉각적인 행동에 착수했다.
이번 개정법의 핵심은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한 점이다. 그동안 직접적인 근로계약이 없다는 이유로 뒷짐을 지고 있던 원청 건설사들도 이제는 하청 노조의 임금 인상이나 안전 관리 강화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게 됐다.
현장 취재 결과, 대형 건설사들은 법무법인과 노무법인을 동원해 교섭 요구 시 대응 매뉴얼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삼성물산이 최근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로 한 것도 이러한 노동 규제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현장 관계자는 "의제별로 사용자성 인정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겠지만, 하청업체의 경영권과 충돌하는 지점이 많아 혼선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노동계는 이번 법 시행을 다단계 하도급 구조 개선의 기회로 보고 있다. 건설노조는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관리 책임 강화를 핵심 의제로 내세우며 원청의 실질적인 결단을 압박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공사를 총괄하고 비용을 결정하는 원청이 빠진 교섭은 반쪽짜리에 불과했다"며 공세 수위를 높일 뜻을 분명히 했다.
업계에서는 노사 갈등 격화가 공사 지연과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공정 간 연계성이 높은 건설 특성상 특정 공정에서 파업이 발생하면 전체 공기가 연쇄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금융비용 증가와 분양가 상승 압박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대응 역량이 부족한 중견·중소 건설사들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별도의 노무 전담 조직이 없는 상황에서 쏟아지는 교섭 요구를 감당하기 벅차다는 토로가 나온다. 법무법인 화우 등 전문가 그룹은 계약 구조 설계 단계부터 리스크를 관리하는 선제적 컴플라이언스 체계 구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법 시행 초기인 만큼 '실질적 지배력'에 대한 사법부의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나오기 전까지 현장의 대립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원청의 책임 범위와 교섭 의제의 적정성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잇따를 것으로 보여, 건설 현장의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이번 법 시행이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하도급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지, 아니면 공사 중단과 비용 폭증이라는 부작용만 낳을지는 향후 전개될 원·하청 간 첫 단체교섭 결과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