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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데코 화가의 욕망을 무대로…뮤지컬 "렘피카" 서울 공연 마무리

이지원 기자 | 입력 26-06-21 17:08



아르데코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삶을 다룬 뮤지컬 "렘피카"가 서울 공연을 마무리한다. 코엑스아티움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한 예술가의 생애를 순서대로 따라가는 방식 대신, 혁명과 망명, 사랑과 성공 사이에서 흔들린 인물의 내면을 강한 조명과 전자음악, 기하학적 무대 언어로 풀어냈다.

"렘피카"는 20세기 초 유럽 미술계를 배경으로 한다. 러시아 혁명 이후 파리로 건너온 타마라는 생존을 위해, 또 이름을 남기기 위해 붓을 든다. 남편 타데우시와의 관계, 뮤즈 라파엘라와의 만남, 상류사회로 진입하려는 욕망이 그의 예술과 충돌한다. 작품은 타마라를 단순한 성공한 여성 화가로 세우지 않는다. 시대가 요구한 얼굴과 자신이 원하는 삶 사이에서 끝없이 선택해야 했던 사람으로 그린다.

무대는 타마라의 그림처럼 직선과 면으로 구성된다. 거대한 철제 구조물은 장면마다 비대칭으로 움직이고, 인물들은 그 사이에 놓인다. 누군가는 높은 곳에 서고, 누군가는 선 밖으로 밀려난다. 계급과 욕망, 고립의 감각이 대사보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장식적인 시대 재현보다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데 무게를 둔 선택이다.

조명은 무대의 온도를 빠르게 바꾼다. 원색에 가까운 빛이 철제 구조물과 배우의 몸을 가르며 장면을 만든다. 파리의 화려함은 낭만적 풍경보다 날카로운 대비로 표현된다. 객석에서 보이는 무대는 종종 움직이는 캔버스처럼 보인다. 타마라의 그림이 가진 차갑고 매끄러운 표면, 그 아래 흐르는 불안이 함께 드러난다.

음악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이다. 매트 굴드의 넘버는 팝과 록, R&B, 일렉트로팝을 오가며 1920년대의 속도와 현대적 감각을 동시에 불러낸다. 신시사이저의 차가운 질감과 드럼의 강한 타격은 타마라가 통과한 시대의 불안을 청각적으로 밀어붙인다. 높은 음역과 급격한 전조는 인물의 욕망이 터지는 순간마다 무대의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타마라를 둘러싼 관계는 극의 중심 갈등을 만든다. 남편 타데우시는 그에게 안정과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라파엘라는 타마라가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숨기지 못했던 해방의 감각을 건드린다. 작품은 이를 단순한 삼각관계로 소비하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서 흔들리는 타마라의 선택을 통해 예술가의 정체성과 생존 방식이 어떻게 부딪히는지를 보여준다.

음악의 결도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타마라와 타데우시가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비교적 정돈된 선율이 흐르고, 라파엘라와의 장면에서는 규칙을 밀어내는 듯한 록 사운드가 전면에 선다. 같은 인물이 누구와 마주하느냐에 따라 무대의 리듬이 달라지는 구조다. 타마라가 붙잡고 싶은 세계와 벗어나고 싶은 세계가 소리로도 구분된다.

작품이 흥미로운 지점은 타마라를 영웅으로만 포장하지 않는 데 있다. 그는 야망을 숨기지 않고, 때로는 냉정하게 선택한다. 그러나 그 선택의 배경에는 혁명과 전쟁, 망명자의 불안, 여성 예술가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자리가 놓여 있다. 무대는 타마라의 욕망을 비난하거나 미화하기보다, 그 욕망이 만들어진 조건을 함께 보여준다.

한국 프로덕션은 브로드웨이 작품을 그대로 옮겨오는 데 머물지 않고, 시각적 밀도와 배우의 에너지를 앞세워 관객과의 거리를 좁혔다. 아르데코의 미학은 무대 장식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 구조로 쓰였고, 전자음악은 시대극을 현재의 감각으로 끌어당기는 장치가 됐다.

"렘피카"의 서울 공연은 21일까지 코엑스아티움에서 이어진다. 한 예술가의 삶을 통해 작품이 남긴 질문은 명확하다. 시대가 정한 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바꾼 사람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을 한국 무대가 어떤 방식으로 다시 번역해낼 수 있는지가 이번 초연이 남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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