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새로운 지도부와 함께 다시 출발선에 섰다.
지난 8월 17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국당원대회에서 김민석 후보가 최종 54.08%를 얻어 정청래 후보를 누르고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 김 대표의 임기는 2년으로, 2028년 총선까지 집권여당을 이끌게 된다.
그러나 한 정당의 대표가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대표에게 주어진 것은 축하의 꽃다발만이 아니다. 그 꽃다발 뒤에는 국민의 무거운 삶이 있고, 정치에 대한 실망이 있으며, 민생을 살려달라는 절박한 목소리가 있다.
그래서 김민석 대표 체제의 출범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기대와 함께 엄중하다.
당대표가 된다는 것은 한 정파의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책임자가 되는 것이다.
승리의 순간부터 정치는 다시 시작된다
전당대회는 경쟁의 공간이다.
후보들은 서로 다른 정치적 비전과 노선을 제시했고, 당원들은 선택했다. 치열한 경쟁은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도 승자와 패자가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김민석 대표는 선출 직후 경쟁했던 정청래·송영길 의원을 끌어안으며 함께 뛰겠다는 통합 의지를 나타냈다.
이 장면이 단순한 정치적 연출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정치에서 포옹은 쉽다.
어려운 것은 포옹 이후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의 목소리까지 듣는 것, 다른 생각을 가진 동료에게도 자리를 내어주는 것, 지지층이 원하지 않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국민 전체를 위해 필요하다면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통합이다.
김민석 대표에게 필요한 첫 번째 리더십 역시 바로 이것이다.
승자의 정치가 아니라 통합의 정치다.
당대표 선거에서 자신에게 표를 던진 사람만 바라본다면 절반의 대표에 머물 수밖에 없다. 민주당 당원 전체를 품고, 더 나아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집권여당 대표라는 이름에 걸맞은 정치가 시작된다.
‘원팀’은 대통령을 위한 구호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약속이어야 한다
김민석 대표는 취임과 함께 통합과 당청 간 ‘원팀’을 강조했다.
집권여당과 정부의 원활한 협력은 필요하다.
국정 철학을 공유하고 정책을 조율하며 국민에게 약속한 과제를 신속하게 추진하는 것은 책임정치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당정의 일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 목적은 오직 국민의 삶이어야 한다.
대통령을 성공시키기 위한 정당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성공시키기 위한 정당이어야 하고, 정부를 보호하는 여당이 아니라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누구보다 먼저 바로잡을 수 있는 여당이어야 한다.
좋은 여당은 대통령에게 박수를 가장 크게 보내는 정당이 아니다.
잘한 일에는 힘을 보태되 잘못된 일에는 국민을 대신해 가장 먼저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정당이다.
정부와 여당 사이에 벽이 없어야 한다는 말도 결국 국민을 위한 정책을 빠르고 책임 있게 실현하자는 의미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원팀’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의견이 사라지고 비판이 침묵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당정 관계라고 할 수 없다.
김민석 대표에게는 국무총리를 지낸 경험이 있다. 정부의 작동 방식과 국정의 무게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경험했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다.
이제 그 경험을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 충성 경쟁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정치적 통로로 사용해야 한다.
국민이 기다리는 것은 정치적 승리가 아니라 ‘내 삶의 변화’다
국민은 매일 정치만 바라보며 살아가지 않는다.
아침이면 출근해야 하고, 장사를 해야 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
누군가는 월세를 걱정하고 누군가는 대출이자를 걱정한다.
청년은 일자리를 걱정하고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걱정한다.
자영업자는 하루 매출에 가슴을 졸이고, 중소기업인은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을 걱정한다.
노인은 병원비와 노후를 걱정하고, 농어민은 땀 흘려 생산한 농수산물의 가격을 걱정한다.
정치권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이 쏟아지지만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래서 내 삶은 나아졌는가.”
정치는 결국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개혁도 중요하다.
제도개선도 필요하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 역시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정치의 끝에는 국민의 삶이 있어야 한다.
민생 없는 개혁은 오래갈 수 없으며 국민의 체감 없는 성과는 정치권만의 성과가 되기 쉽다.
김민석 대표 체제의 민주당이 가장 먼저 바라보아야 할 곳은 여의도의 회의실이 아니라 시장과 골목, 공장과 농촌, 청년들의 작은 방과 서민들의 식탁이다.
정치는 가장 힘든 사람에게 가장 먼저 도착해야 한다.
그것이 진보와 보수를 넘어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다.
민주당은 ‘강한 정당’보다 ‘신뢰받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거대 여당의 힘은 의석수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진정한 힘은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숫자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숫자로 국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는 없다.
민주당이 경계해야 할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국민이 부여한 힘이 크면 책임 또한 커진다.
다수라는 이유로 야당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도 안 되고, 지지율이 높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국민을 가볍게 바라봐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는 나를 지지하는 사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고, 때로는 그 비판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따라서 김민석 대표가 만들어야 할 민주당은 목소리가 큰 정당이 아니라 국민의 작은 목소리를 잘 듣는 정당이어야 한다.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잘못하면 인정하고, 필요한 경우 사과할 줄 아는 정당이어야 한다.
정치인의 사과는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킨다.
야당과 싸우는 정치보다 국민을 위해 경쟁하는 정치를
대한민국 정치는 너무 오랫동안 상대를 쓰러뜨리는 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 왔다.
여당은 야당을 공격하고 야당은 여당을 공격한다.
정권이 바뀌면 공격하는 사람과 방어하는 사람의 자리만 바뀌는 듯한 모습을 국민은 수없이 지켜봤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야당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경쟁해야 할 상대다.
민주당과 야당이 경쟁해야 할 것은 누가 더 강한 말을 하는가가 아니다.
누가 청년에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주는가.
누가 서민의 주거 부담을 줄이는가.
누가 자영업자의 눈물을 닦아주는가.
누가 지역을 살리고 지방소멸을 막을 것인가.
누가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을 준비하고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바로 이런 경쟁을 국민은 기다리고 있다.
김민석 대표가 야당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협치는 굴복이 아니다.
국민에게 필요한 법안이라면 여야가 함께 처리하고, 국가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면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정치가 정상적인 정치다.
김민석 대표에게 주어진 2년은 결코 길지 않다
정치의 시간은 빠르다.
오늘의 환호는 내일이면 사라진다.
전당대회의 박수와 꽃다발도 결국 기록 속으로 들어간다.
남는 것은 결과다.
김민석 대표가 앞으로 걸어갈 2년 역시 마찬가지다.
그 시간이 지난 뒤 국민은 묻게 될 것이다.
민주당은 더 민주적인 정당이 되었는가.
민생은 나아졌는가.
정치는 통합되었는가.
지역과 세대의 갈등은 줄어들었는가.
정부가 잘못했을 때 여당은 제대로 말했는가.
국민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었는가.
그리고 대한민국은 2년 전보다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갔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오늘의 승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
반대로 그 질문에 국민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김민석 대표의 이름은 단순히 한 정당의 당대표 명단에 기록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 정치가 한 걸음 성숙하는 과정에 남게 될 것이다.
정치의 마지막 자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정치를 하다 보면 숫자를 보게 된다.
지지율을 보고, 의석수를 보고, 선거 득표율을 본다.
하지만 정치가 끝까지 바라봐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새벽 첫차에 몸을 싣는 노동자.
하루 종일 가게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자영업자.
취업 원서를 수십 장 쓰고도 답을 기다리는 청년.
자녀의 학비를 걱정하는 부모.
병원비가 두려워 아픈 몸을 참고 있는 어르신.
농촌을 지키며 한 해 농사를 걱정하는 농민.
그들의 하루가 대한민국이다.
그들의 눈물이 민생이고, 그들의 희망이 정치가 존재해야 할 이유다.
김민석 대표가 그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당대표 자리도 영원하지 않다.
정권도 언젠가는 바뀐다.
그러나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오래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김민석 대표에게 화려한 정치보다 따뜻한 정치를 기대한다.
강한 말보다 책임 있는 말을 기대한다.
박수받는 정치보다 욕을 먹더라도 국민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정치를 기대한다.
자신을 지지한 국민뿐 아니라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까지 품는 정치를 기대한다.
이제 김민석의 정치가 증명해야 한다
김민석 대표 체제가 출범했다.
이제 전당대회는 끝났다.
승리의 환호도 내려놓아야 한다.
오늘부터 김민석 대표 앞에 놓인 것은 국민의 삶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다.
당을 하나로 만드는 일도 해야 한다.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해야 한다.
야당과 대화해야 한다.
개혁도 추진해야 한다.
경제와 민생도 챙겨야 한다.
무엇 하나 가벼운 일이 없다.
그러나 정치란 본래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는 일이다.
국민에게 권한을 받은 사람은 그만큼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
그래서 김민석 대표에게 당부한다.
국민보다 앞서가지 말고 국민과 함께 걸어가라.
힘 있는 사람의 목소리보다 힘없는 사람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라.
청와대와 국회만 바라보지 말고 시장과 골목을 바라보라.
당원들의 박수만 듣지 말고 정치에 실망한 국민의 한숨까지 들어라.
그리고 언젠가 대표직을 내려놓는 날, 국민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기를 바란다.
“권력을 위해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위해 정치를 했다.”
그 한마디를 국민이 진심으로 인정해 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큰 정치적 성공은 없을 것이다.
김민석 대표의 당선을 축하한다.
그러나 축하보다 더 큰 것은 당부다.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 또 한 번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진영을 넘어 민생으로, 권력을 넘어 책임으로 가야 한다.
정치의 주인은 대통령도, 당대표도, 국회의원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 평범하지만 가장 위대한 원칙을 끝까지 지키는 것.
그것이 김민석 대표가 성공하는 길이며, 집권여당이 성공하는 길이고, 결국 대한민국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길이다.
새로운 지도부의 출범이 단순한 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다시 정치의 중심에 세우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2년 뒤 우리는 오늘을 돌아보며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 대한민국 정치가 조금은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국미디어일보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