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높은 자리에 오른 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잊는 사람이 있고, 높은 곳에 올라서도 처음 바라보았던 사람들을 잊지 않는 사람이 있다.
고(故) 제정구 전 국회의원의 삶을 들여다보면 ‘정치란 결국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그는 1972년 서울 청계천 판자촌에서 야학 교사로 활동하면서 도시 빈민의 현실과 마주했다. 이후 철거민과 도시 빈민의 생존권과 인권을 위해 오랜 시간 활동했고, 정일우 신부와 함께 빈민 공동체를 만들며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1986년에는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막사이사이상 지역사회지도 부문을 공동 수상했으며, 훗날 제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제정구라는 이름을 다시 불러야 하는 이유는 그가 국회의원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사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밀려나던 사람들, 철거라는 이름 아래 삶의 터전을 잃어가던 사람들, 누구도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끼던 사람들 곁에 그는 서고자 했다.
화려한 말보다 함께 사는 것을 선택했고, 멀리서 바라보기보다 그들의 이웃이 되는 길을 택했다.
그가 정일우 신부와 함께 세웠다는 빈민운동의 원칙 가운데에는 특별한 문장이 있다. 거창한 사업을 앞세우기보다 “그냥 산다”, 그리고 이웃이 자신들을 필요로 할 때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짧은 말이지만 가슴을 오래 붙잡는다.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사람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
눈물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만 그 눈물이 마를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은 어렵고, 가난을 걱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가난한 사람과 같은 골목을 걸어가는 것은 더 어렵다.
제정구는 그 어려운 길을 자신의 삶으로 선택했다.
그래서 그의 삶을 바라보면 정치보다 먼저 사람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른다.
정치에는 수많은 연설이 있고 수많은 구호가 있다. 국회에서는 매일 많은 말이 오간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사람들은 모든 연설을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한다.
누가 내 곁에 있었는지.
누가 내가 가장 힘들 때 손을 잡아주었는지.
그리고 누가 아무도 듣지 않던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었는지를.
제정구가 ‘빈민의 벗’, ‘빈민운동의 대부’라고 불렸던 것도 그의 삶이 오랫동안 도시 빈민의 생존권과 인권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는 어쩌면 그렇게 시작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담론 이전에 한 사람의 눈물을 바라보는 것.
수많은 통계 속에서 사라져 버린 한 가정의 사정을 살피는 것.
목소리가 큰 사람보다 목소리를 낼 힘조차 없는 사람에게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정치에 기대하는 가장 소박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모습일 것이다.
제정구는 1999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사람을 향했던 그의 삶은 세월이 지나도 질문으로 남아 있다.
“당신이 가진 힘은 지금 누구를 위해 쓰이고 있는가.”
이 질문은 정치인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다.
조금 더 가진 사람이 조금 덜 가진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조금 더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의 곁을 지켜주며, 누군가 넘어졌을 때 모른 척 지나가지 않는 사회.
아마 제정구가 걸었던 길 끝에는 그런 세상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결국 떠난다.
명예도, 권력도, 자리도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남긴 따뜻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준 기억, 절망하던 사람에게 건넨 손,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 옆에서 끝까지 버텨준 시간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에 남는다.
그래서 오늘 제정구를 생각하며 다시 묻는다.
좋은 정치는 무엇인가.
그 답은 어쩌면 아주 단순할지도 모른다.
가장 낮은 곳의 사람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끝내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것.
정치인이 떠난 자리에는 직함이 남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남는다.
그것이 한 정치인의 삶이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울림일 것이다.
한국미디어일보
이명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