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가족과 피해자가 여러 차례 위험 가능성을 알렸던 아동과 교제폭력 피해 여성이 잇따라 숨지면서 경찰의 대응 체계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8월 현직 경찰관의 실종 신고 허위 종결 사건 이후 제주경찰청이 치안 체계 개선과 신뢰 회복을 약속했지만, 현장에서 위험 신호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14일 제주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후 서귀포시 표선면의 한 오름 주차장에 세워진 렌터카 안에서 40대 남성과 네 살배기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차량에서는 번개탄이 발견됐으며 경찰은 아버지가 딸을 숨지게 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포함해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호주에 거주하는 아동의 어머니는 사건 발생 열흘 전인 지난 2일 제주경찰청에 "전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잠적했으며 딸을 다치게 할까 봐 불안하다"는 취지로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이를 공식 실종 신고로 접수하지 않았고, 아버지와 직접 만나거나 전화해 아동의 안전을 확인하지도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아버지는 지난해 10월 호주에서 이혼과 양육권 재판이 진행되던 중 어머니의 동의 없이 딸을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와 제주에서 생활했다. 어머니는 올해 4월 서울 성동경찰서에 딸의 실종 신고를 한 뒤 제주 경찰에도 여러 차례 소재 파악과 안전 확인을 요청했다.
경찰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 27일까지 서귀포시 아동보호팀과 함께 모두 8차례 아버지와 아동을 만나 안전과 학대 여부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달 2일 신고 당시에는 서귀포경찰서로부터 "지난달 28일까지 아버지와 연락이 됐고 별다른 위험 요인이 없다"는 답변을 받아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같은 날 새벽 제주시에서 발생한 교제 살인 사건에서도 이전 신고에 대한 경찰 조치가 적절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40대 여성은 헤어진 연인인 60대 남성에게 강제로 차량에 태워진 뒤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 여성은 지난해 10월부터 스토킹과 성폭력, 교제폭력 등으로 해당 남성을 네 차례 신고했다. 그러나 신고는 피해자가 처벌이나 정식 사건 접수를 원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경고 또는 종결 처리됐다. 경찰은 성폭력 신고의 경우 피해자가 조사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아 증거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에게 지급된 스마트워치도 범행을 막지 못했다. 가해 남성이 피해자를 차량에 태우는 과정에서 스마트워치를 뜯어낸 것으로 조사됐으며, 경찰에 위치 정보가 정상적으로 전달되지 않은 정황도 확인됐다. 경찰은 과거 신고 처리 과정과 피해자 보호 조치가 매뉴얼에 따라 이뤄졌는지 점검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실종자와 통화하지 않고도 안전을 확인한 것처럼 허위로 기록해 사건을 종결한 사실이 드러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불거졌다. 당시 해당 경찰관은 실종 사건 관련 기록을 임의로 삭제한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았고, 제주경찰청은 관련 사건을 전수 점검하며 현장 대응 체계를 재정비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강력범죄 발생 자체만으로 제주 지역 전체의 치안 수준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정 사건이 전국적으로 집중 보도되면서 관광업과 숙박업 등에 불필요한 불안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다.
경찰 대응의 핵심 쟁점은 범죄 발생 건수보다 반복적으로 전달된 위험 신호가 현장에서 어떻게 분류되고 처리됐는지에 있다. 아동 안전 우려와 스토킹·교제폭력 신고가 실제 보호 조치로 연결되지 못한 경위를 규명하고, 신고 접수와 위험성 판단 과정에 책임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남았다.
양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