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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송병민)

송병민 | 승인 22-08-19 23:33 | 최종수정 22-08-19 23:35(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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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딸들’을 읽고
 약 2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가 어느 정도 현재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구석기인들의 삶은 많은 면에서 현재와 닮았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못하는 점을 제외하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집단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남녀 사이에 행해지는 폭력과 사랑,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 혈연 갈등, 고독의 문제 등은 인간사회에서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다시 말하면, 지금부터 2만 년이 지나도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는 완전히 해결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문제다. 

 ‘야난’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구석기인들의 삶에서 가장 큰 문제는 매일 먹어야 할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고, 따라서 사냥을 잘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논리는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지금의 현실을 매우 닮았다. 영적 소통이 가능한 샤먼 집안이 혼인 관계에서 선호되는 것도 지금의 종교인들이 가진 영향력과 매우 닮았다. 죽은 조상의 영들이 함께하고, 그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위한 의식을 치르는 것도 지금과 닮았다.

 생존의 문제 때문에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집단에서 ‘떠남’을 선택하는 ‘야난’의 모습은 인류가 한 단계 진보해감을 상징한다. ‘야난’은 ‘떠남’으로 인해 처음으로 고독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고독이란, 진화의 감정에서 발달한 감정으로서 뭔가 알려주는 신호’라고 한 인류학자가 말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는 인식은 생리현상을 교란하고 면역체계를 해친다.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이어 아버지가 영혼이 되던 날로부터, ‘야난’은 동생 ‘메리’를 보호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실존에 마주한다. 무리를 벗어난 그들의 삶은 위태롭다.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낯선 위험으로부터 씩씩하게 살아나가는 ‘야난’과 마주한 늑대 가족은 이들이 처한 고독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 동물은 인간에게 말을 걸기만 해도 친구가 된다고 했다. 인간끼리는 대화한다고 해서 다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늑대와 같은 동물은 구석기인들에게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 지금의 개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 늑대다. 소외된 메리에게 새끼 늑대는 고독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새끼 늑대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오해로 촉발된 ‘야난’과 ‘티무’의 갈등은 ‘야난’으로 하여금 익숙한 품을 떠나는 계기가 되게 하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동시에 ‘엘로’와의 부정 그에 따른 가족들의 분노는 ‘야난’의 외로운 출산과 죽음으로 이어진다. 가장 애정한 존재가, 동시에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사랑은 파괴적이다.

 어느 날 밤 꿈에 ‘그레이랙’은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먼 길을 가는 기러기의 강인함을 칭찬한다. 그리고 ‘야난’에게 말한다. “너는 무리에서 벗어났구나!” 

 우리는 타인의 평가와 시선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그리고 타인 또한 우리의 평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판단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필요 없는 것이다. 자신만을 위하는 고려는 불쌍한 것이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평가라는 명목하에 타인의 정체성을 난도질한다. 타인이 느끼는 괴로움과 아픔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타인의 평가를 마음에 두며, 나는 그렇지 않다는 해명을 하느라 애쓰며 살아간다. 몸을 부대끼며 한 움막 내에서, 그리고 하나의 동굴에서 살아가는 그들이기에 타인의 평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장을 위한 평가가 아니라 불쾌한 감정에서 일렁이는 비판은 서로를 병들게 한다. 그리고 그런 비난에 대한 ‘야난’의 감정적인 반응은 여러 차례 집단 내 갈등을 초래한다.

 ‘야난’의 내면은 자아(Ego)와 자기(Self)가 끊임없이 충돌한다. 보이고 싶은 자아와 진짜 자기의 충돌. 부족을 떠나 임신한 아기의 ‘진짜 아버지’를 둘러싼 소문과 비난의 시선은 결국 이야기를 파멸로 몰고 간다. 그러함에도, 생존을 위해 집단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사실. 소속감이 폭력이 되어 내면의 자아를 무너뜨린다. 

 ‘메리와 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마지막 며칠 동안은 거의 뛰다시피 했다.’ 

 돌아온 ‘야난’은 새로운 가족과 만남을 통해 새로운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내면의 갈등을 통해 서서히 싹트는 윤리적인 의식과 관계의 의미를 고민하게 된다. 약혼자인 ‘티무’가 ‘에스티’와 결혼한 상황에도 혼인을 거부할 자유가 없다는 것, 아이를 낳지 않을 자유가 없다는 것, 이 모든 것은 공동체를 떠나 살아가기 힘든 현실에서 나타나는 결과다. 내가 나를 둘러싼 관계를 결정할 수 없는 현실. 부족을 떠나 생존할 수 없는 현실은 공동체가 주는 긴장과 스트레스이다. 먹을 것과 안전을 제공하는 대신에, 강요되는 남성의 폭력과 힘이 있는 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부족 간의 위계질서,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하는 소극적 자유의 박탈은 구석기 시대가 가진 한계인 동시에, 아직 세상의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하는 집단 무의식이다. 

 혼인 대가로 지급하는 지참금과 예물의 교환이 구석기 시대부터 이어진 관습이라는 점은 매우 놀랍고, 얼마나 인간사회가 보수적인지를 보여준다. 동물사회에서 혼인을 원인으로 답례품을 전달하는 사례가 있을까? 어쩌면 혼인을 매개로 사회를 유지하고 권력을 키워가는 모습이 인간과 동물을 규정하는 차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라의 귀족들이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근친혼을 이어간 역사는 인간 내면에 뿌리내린 두려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믿을 수 있는 것은 가족이고, 이것은 같은 조건에서는 친구보다는 가족을 선택한다는 해밀턴 법칙이 동물이 아닌 인간사회에도 적용이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더군다나 신체적 접촉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 구석기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어쨌건, 그 시대에도 약속은 지켜져야 할 중요한 가치고, 재물에 그 의미를 부여하였다. 결혼반지는 결혼을 온전하게 유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사표시이다. 혼인을 약속하고 먼저 선물을 주는 행위는 그 약속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다. 이 또한 동물사회에서 흔히 발견될 수 있는 행위인지 궁금증이 생긴다.

 샤먼의 존재와 조상과의 영적인 소통은 전 세계 어느 종족 어느 민족에게나 있는 자연 발생적인 인간의 성향인 것 같다. 여신 ‘오헌’은 힘듦을 견디는 힘을 준다. 성인이 되어가는 고통스러운 의식과 아이를 낳으며 죽어가는 ‘야난’에게 유일한 의지처가 된다. 자연은 많은 것을 주지만,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 내일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자에게는 의지할 대상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채워졌을 때 감사할 대상이 필요할 것이다. 많은 것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사피엔스 눈에는 자연에서 벌어지는 나고 사라짐의 순환원리가 훨씬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게 자연과 대화를 하고 만나는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기도하면 영적인 존재와 접할 기회가 많은 것처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피엔스가 영적으로 예민한 것은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죽는 것은 곧 다시 태어남이고, 다른 모습으로 함께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멕시코의 ‘포묵’이라는 원시 마을에는 매년 망자의 날을 기념한다. 매년 10월 구천 명 주민들이 인근 묘지를 찾아 조상들의 유골을 꺼내어 닦고, 새 옷을 입힌다. 
  
 ‘야난’은 죽어 늑대가 된다. 그리고 영이 되어 어머니를 만난다. 죽어서 만날 부모님을 정성스레 모시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다. 많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나타나는 구석기 시대의 삶을 살아가는 부족의 기도를 보면, 바램보다는 감사기도가 더 많다. 아주 작은 것 하나에 감사하는 삶,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들 죽어서도 모시는 삶, 이들에게는 감사가 몸에 베여있다.

 그리고 이따금 벌어지는 깊은 밤 피의 축제는 샤먼들에게 영이 깃들게 하고, 그들의 몸은 영매가 된다. 이런 충격적인 행위의식은 죽은 영과 공존함을 느끼게 하고, 샤먼의 힘을 더욱 강화한다. 영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신과의 대화는 또한 공유하는 자연에 대한 존중심을 보임으로써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자연 파괴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대부분의 문명인과 달리, 이런 영적인 페스티발은 자연을 마치 자신의 몸처럼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했기에, 굶주림속에서도 그들의 삶은 지속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다윈은 ‘적자생존’이란 개념으로 본인의 진화개념에 오점을 남겼을는지 모른다. 구석인들 삶에서 욕심이나 이기주의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최소한의 삶을 위한 경쟁이었고, 큰 동물을 사냥하는 경우에도 한 마리 이상 욕심내지 않았다. 하루 아주 작은 양을 먹는 것에도 감사했고, 겨울철 먹을 것이 없는 경우를 대비한 비축이 전부였다. 소유하지 않았고, 나누었다. 아무리 배고파도 혼자서 전부 다 차지는 경우는 없다. 나누는 것이 곧 함께 사는 것이라는 지혜를 지녔다. 모든 생명은 죽는다. 그리고 죽어서 다른 것을 살린다. 죽은 순록의 사체를 뜯어먹는 하이에나와 까마귀의 배설물들을 통해 자연은 윤택해진다. 초식동물이 먹은 배설물을 통해 씨앗은 더 멀리 퍼져나간다. 순록이 가는 길은 정해져 있으나, 까마귀가 날아가는 반경은 자유롭다. 이렇게 자연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로움을 제공하며 자연을 윤택하게 한다. 먹고 먹히는 투쟁적 관점에서만 보면, 세상은 삭막하다.
  
 그래서 죽음은 생명의 탄생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야난’의 여동생처럼, ‘티무’의 아들처럼 이름 없이 죽어간 영혼들이 있다. 그리고 동물 대부분은 이름도 없이 죽는다. 삶은 조금 더 사냐 덜 사냐의 문제이다. 세상 자연 만물은 순환한다. 사피엔스는 이런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얼음을 녹이는 달, 월귤의 달, 굶주림의 달... 그들의 언어는 자연적이다. 세상을 인식하는 도구인 언어. 1월, 2월, 3월이란 표현에는 어떠한 인간미도, 자연과의 관계도 느낄 수가 없다. 순록의 달인 10월은 풍요로운 달이다. 추수감사절이 있는 달이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엄마의 삶. 눈 앞에서 목격한 엄마와 동생의 죽음 앞에, 결코 엄마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숙명처럼 그 길을 걸어간다. 여자로 태어난 이상 엄마로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남자또한 마찬가지다. 남자로 태어난 이상 아버지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동시에 짊어 지는 것이다. 고통은 행복을 수반한다. 그러나 구석기 인들에게 있어 출산은 너무도 많은 경우에 죽음으로 이어졌기에, 대부분 고통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출산 직후 또 정이 어느 정도 들기 시작하면 자식들은 죽어갔다. 

 “나는 끝내 아기를 낳았다. 이 아기가 누구의 아이가 되든 나는 마침내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나는 강인하지도, 거룩하지도 않지만 아기를 낳고 보니 이제는 더 이상 비참해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이제는 울지 않을 것이다. 이 아이가 내 곁에 있는 이상은 이제부터 눈물을 흘리는 연약한 모습은 절대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를 냉대하는 사람들의 극히 작은 배려에 의지해서 비굴하게 사는 것도 이젠 끝이다.“

 여자에서 엄마로 되는 과정은 이론적으로 혹은 다른 경험을 통해서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오직 고통을 통한 출산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각과 고뇌를 통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출산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하나의 특이점이 된다. 오직 세포 마디마디를 통해서 전달되는 감각적 고통은 이성적인 이해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아이를 잃은 엄마의 고통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야난’의 삶을 읽으며, 한 구석기인의 삶을 읽었고, 한 여자가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슬픔을 읽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그들의 삶이 이런저런 고난 속에서도 유지되었기에 가능한 것이기에, 언젠가 영혼이 그들을 만나게 되면, ”고생많이 했어요. 수고했어요.“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Mov Education 송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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